JSR 홈페이지의 모습./JSR 홈페이지

일본의 반도체 화학소재 기업 JSR이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투자 펀드에 인수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반도체 업계 거래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전격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해 6월 JSR은 한 투자펀드에 64억달러(약 8조5196억원)에 인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JSR은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 설계를 인쇄하는 데 쓰이는 특수 화학물질 포토레지스트를 공급하는 업체다. 삼성전자나 TSMC, 인텔 등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유는 이를 인수하는 펀드가 일본의 산업 정책을 지시하고 수립하는 정부 부처 경제산업성이 감독하는 정부 지원 펀드 일본투자공사(JIC)였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산업성 장관이었던 니시무라 야스토시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과 개발에 중요한 소재 분야에서 일본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이 거래를 지지했다.

하지만 거래업체와 투자자들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본격 개입하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JIC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후지쓰의 반도체 패키징 사업부인 신코전기산업을 47억달러(약 6조2566억원)에 인수했다.

JIC의 요쿠 게이스케 최고경영자(CEO)는 일본의 중소기업이 기술력만으로는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JSR과 신코전기가) 디지털 시대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노력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일부 JSR 투자자들은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제고 노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JSR과 JIC는 이 거래가 사실상 민간 기업의 국유화라는 의혹에 대해 반발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업 인수에 대한 평가는 JSR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이며 정부는 민간 기업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국가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려면 “특정 기업을 소유하기보다 수출 통제를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자자나 거래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다. 수년간 JSR 주식을 보유했던 한 미국 펀드 매니저는 “일본 시장이 나아갈 방향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거래는 당혹스럽다”고 했다.

에릭 존슨 JSR 대표는 지난해 FT와의 인터뷰에서 “고객사들과 많이 논의하면서 이 거래가 정치적 문제가 아니며, 경제적 사안이라고 설명했다”면서 “우리는 회사와 일본 경제를 위해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인수 소식이 공개된 후 몇 주 동안 삼성과 TSMC 등 대형 고객사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 상장 기업이 왜 국부펀드에 의해 서둘러 인수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특히 주요 공급업체 이사회에 JIC가 참여하게 되면 일본 정부가 거래기업의 민감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JSR 일부 경영진은 이번 거래로 글로벌 포토레지스트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고객이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의 반독점 심사가 지연되면서 JIC의 JSR 주식 공개매수 개시 시점이 지난해 지난 달 말에서 올해 다음 달 말로 미뤄졌다.

사이토 카즈요시 이와이코스모 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당국이 거래를 승인하지 않아 거래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