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對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에 엔비디아가 성능을 낮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성능에 만족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자체 개발한 대체품을 찾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화웨이의 AI 칩이 그나마 대안으로 제기되기만, 사실상 엔비디아 AI 칩을 대체할 만한 뾰족한 수가 마땅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미국 반도체 컨설팅 업체 세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곧 출시 예정인 엔비디아의 중국용 AI 반도체(H20·L20·L2)는 게임용 그래픽 카드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 가지 중국용 AI 반도체 중 가장 고성능인 H20의 연산 능력은 296TFlops(테라플롭스·1초당 1조번의 연산 처리가 가능한 컴퓨터 성능 단위)로, RTX 4090 게이밍 그래픽 카드(661TFlops)보다 낮다. 엔비디아의 AI 칩 H100(1979TFlops)과 비교하면 H20의 연산 능력은 5분의 1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자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현지에서 AI 칩을 조달하는 대안을 찾아 나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IT 기업들이 일부 첨단 반도체 주문을 화웨이로 옮겨, 화웨이의 AI 칩 ‘어센드 910B’ 수요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이 칩은 엔비디아 첨단 반도체 A100의 대체재로 개발됐다. 화웨이가 자국 기업들로부터 수주한 어센드 AI 칩은 5000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국산 칩이 엔비디아 AI 칩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화웨이가 현재 생산하는 AI 칩의 수율은 20% 수준이라고 대만 디지타임스는 전했다. 화웨이는 올 하반기 새로운 AI 칩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극자외선(EUV) 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채 수율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중국 군과 국영기관마저도 강화된 미 제재가 발동된 이후 최근까지 엔비디아 AI 칩을 상당량 비축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이 역시 중국 반도체 기업이 엔비디아를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는 걸 방증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로이터는 국영기관이 반도체 암시장을 통해 엔비디아 칩을 조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중국 반도체 암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미 대기업에 팔고 남은 재고나 제3국의 회사를 통해 흘러 들어간 엔비디아 AI 칩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I 칩이 더 귀해진 최근엔 중국 기업들이 암시장에서 엔비디아의 게이밍 그래픽 카드를 대량 구매해 AI 컴퓨팅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일각에선 미 규제에도 중국 내 엔비디아 반도체 밀거래와 밀반입을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