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스피커 누구 캔들 SE./SK텔레콤

챗GPT를 비롯해 인공지능(AI)이 일상 속으로 들어왔지만, AI 스피커는 자취를 감췄다. 한때 국내 주요 IT 대기업들이 AI 스피커를 공격적으로 개발해 내놨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신제품 출시는 더 이상 없는 상황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네이버·카카오·SK텔레콤·KT 등이 신규 AI 스피커 개발을 중단하고, 제품 생산도 멈췄다. AI 스피커는 AI 음성인식 기술을 탑재한 제품으로, 사용자가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면 이를 인식해 음악 재생이나 정보 제공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삼성전자는 2020년 음성 AI 비서 ‘빅스비’를 탑재한 ‘갤럭시 홈 미니’를 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존재가 잊혀졌다. 지난해 1월 갤럭시 홈 미니2로 추정되는 제품의 전파인증 통과가 포착됐으나 출시는 무산됐다.

다른 기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네이버는 인테리어 소품 성격인 ‘클로바 램프’ 외 모든 AI 스피커의 판매를 중단했다. 2017년 AI 스피커 ‘카카오 미니’를 내놨던 카카오는 지난 2020년 이후 더 이상 신제품 출시가 없다.

AI 스피커를 통해 홈 사물인터넷(IoT) 시장 확대에 나섰던 통신사들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사회공헌 차원의 돌봄 서비스에서 AI 스피커 ‘누구’를 활용하고 있지만, 지난해 조명 기능을 결합한 ‘누구 캔들’이 마지막 제품 출시였다. KT도 지난 2021년 6월 ‘기가지니3′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AI 스피커 신제품을 선보이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사정은 같다. 지난 2014년 처음으로 AI 스피커 ‘에코’를 공개했던 아마존은 지난해 11월 음성인식 AI 사업 부문의 적자가 누적되자 관련 업무 인력을 대량 해고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AI 스피커를 중심으로 한 세계 스마트홈 기기 출하량은 8억7400만대로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네이버의 인공지능 스피커 프렌즈.

업계에선 AI 스피커가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챗봇과 달리 특정 분야에 한정된 답변만을 제공하면서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게 됐다고 분석한다.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답변할 수 있는 챗GPT와 달리 음성인식 AI는 날씨 확인, 음악 재생, 문자메시지 보내기 등 단순한 역할만 수행한다.

특히 AI 스피커의 음성인식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다소 복잡한 문장이나 두 단계에 걸쳐 이뤄지는 문장을 AI 스피커에 질문할 경우 엉뚱한 명령을 실행하는 것이 다반사다. 각 제품마다 인식할 수 있는 명령어도 달라 호환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음성 AI가 다양한 개별 가전기기와 접목되면서 AI 스피커의 활용도가 떨어진 측면도 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음성인식 AI 서비스에 대해 “바위처럼 멍청하다”고 혹평한 바 있다.

다만 음성 AI가 일상 대화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면 또 다른 형태의 제품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AI 스피커는 챗GPT 등 텍스트 기반 생성형 AI 서비스와 달리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 용도가 한정적이고 대중화에 실패한 제품”이라며 “다만 현재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이른 시일 내 챗GPT 수준의 AI 음성 대화 서비스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AI 음성 대화 서비스가 꼭 스피커에 탑재된 모습이 아니라 로봇이나 다른 형태의 제품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