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가 그래픽처리장치(GPU) ‘MI300′ 시리즈를 출시하며 엔비디아와의 시장 점유율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이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ROCm6까지 선보이며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에 나섰다. 이에 엔비디아가 주도하고 있는 ‘쿠다(CUDA)’ 생태계 지형에 변화가 생길지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쿠다는 엔비디아 GPU에 특화된 범용연산 그래픽처리장치(GPGPU) 플랫폼과 응용프로그램개발환경(API) 모델로 지난 2006년 무료로 배포돼 엔비디아의 GPU 시장 점유율을 지탱해 왔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AMD는 최근 출시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ROCm6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들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ROCm6는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AMD의 GPU 가속기와 중앙처리장치(CPU), 서버 플랫폼 환경이 갖춰진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AMD는 ROCm6를 신제품 MI300X에서 구동할 경우 이전 제품인 MI250에서 실행되는 ROCm5 대비 최대 8배 향상된 성능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AMD의 이 같은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 전략은 고객사들의 AMD GPU 의존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AMD의 GPU에 특화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무료 공개해 소프트웨어 사용자 수와 GPU 점유율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최근 빅테크 기업에서도 AMD의 ROCm6와 MI300 신제품 활용 계획을 밝혔다. 생성형 AI 라마2(Llama2)를 출시한 메타는 AMD의 ROCm6와 MI300 시리즈를 사용할 전망이다. 메타는 AI 추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ROCm6와 함께 데이터센터에 AMD 인스팅트 MI300X 가속기를 추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MD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지원 확대 움직임에 엔비디아의 쿠다 생태계를 대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쿠다를 바탕으로 GPU 성능에서뿐만 아니라 GPU를 활용한 AI 소프트웨어 플랫폼 환경까지 주도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5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3′ 기조강연에서 “지난해에만 2500만건의 쿠다 소프트웨어 다운로드가 이뤄졌다”며 “4만개 대기업과 1만5000개 스타트업이 엔비디아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다는 그간 엔비디아가 GPU 시장 점유율을 공고히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개발자들이 쿠다가 지원하는 AI 개발 프레임워크와 각종 라이브러리, 도구 등을 기반으로 개발하다 보니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이에 특화된 엔비디아 GPU를 쓸 수밖에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AI 개발에 핵심이 되는 파이토치(PyTorch)나 텐서플로(TensorFlow) 같은 프레임워크가 쿠다를 통해서만 지원이 됐다”며 “현재까지 대부분의 AI 솔루션은 엔비디아의 쿠다, GPU와 연계돼 개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엔비디아는 쿠다에 그치지 않고 AI 파운드리 서비스 등을 새롭게 출시하며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지속 확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 애저(Microsoft Azure)에 AI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AI 파운드리 서비스는 기업이 맞춤 생성형 AI 모델을 제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한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생성형 AI 모델 기술과 대규모언어모델(LLM) 훈련 전문성, 대규모 AI 팩토리를 통합했다”며 “전 세계 기업들이 맞춤형 모델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계 최고 클라우드 서비스와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AMD가 아직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대체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쿠다 생태계가 워낙 견고해 교체 수요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AMD도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엔비디아의 GPU를 공급받지 못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한편, AMD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이 당장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한 네이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연계된 쿠다의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었다”며 “엔비디아를 비롯한 다양한 기업들이 출시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다각도로 검토해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