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지난 6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성공을 위한 제3차 범정부 추진지원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공동취재단

올해 내내 이어진 반도체 사업 실적 부진에도 경계현 사장이 반도체를 총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 자리를 지켰다. SAIT(옛 종합기술원) 원장까지 겸임하게 돼 보폭은 더 넓어질 전망이다. SAIT는 삼성의 중장기적 선행 기술을 연구개발(R&D)하는 조직이다.

27일 삼성전자는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고 완제품을 총괄하는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과 경계현 사장(DS부문장) 등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2년째 한 부회장과 함께 양대 사업 부문을 맡고 있는 경 사장은 내년에는 DS부문장과 함께 SAIT 원장을 겸직하게 됐다.

이를 두고 삼성전자 내부에선 올해 반도체 사업 부진이 '경영진의 전략 실패'보다는 '전례 없는 반도체 불황 여파에 따른 결과'라는 평가가 우세하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또 내년부터는 삼성전자 실적의 핵심 부문인 반도체 시황이 본격적인 반등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수뇌부가 경 사장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올해 내내 대규모 적자에 시달렸다. 메모리 사업부 실적이 전체 DS부문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 반도체의 연간 적자 규모는 불가피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3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DS부문은 올 3분기에도 3조7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상반기 적자(8조9400억원)를 포함하면 올해 DS부문이 낸 적자는 12조6900억원에 달한다. 다만 D램 평균판매단가(ASP)가 오르고 출하량이 늘어나 적자 폭은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DDR5, LPDDR5x 등 고부가 제품의 수요 급증으로 메모리 업황 반등에 속도가 더해지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은 가동률 저하 등으로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나, 올 3분기 고성능컴퓨팅(HPC)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분기 수주를 달성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DS부문의 실적 개선세가 빨라지면서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 4분기 D램 사업이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에 약 12조원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라며 "HBM의 내년 예약 주문이 이미 완료됐고 신규 생산능력을 확보한 데다 인공지능(AI) 서버 응용처 확대에 최적화된 차세대 메모리 로드맵을 확보해 삼성전자는 AI 메모리 변화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록호 하나투자증권 연구원도 "삼성전자는 메모리 불황에도 인프라 및 선단 공정 투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향후 업사이클에서 경쟁업체보다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온디바이스(기기 탑재) AI는 물론 첨단 패키지 영역 확대는 삼성전자에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과거 삼성전자의 독보적인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는 과제도 남아있다. 올해 삼성전자는 차세대 AI용 메모리로 부상하고 있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를 뒤쫓고 있는 형국이며, DDR5 D램의 경우 경쟁사보다 10나노대 초반 미세공정 전환이 미뤄지며 초기 시장 매출 규모를 늘리는 데 차질을 겪었다. 전체 D램 시장 점유율도 2위인 SK하이닉스가 5%포인트(P) 차이로 격차를 줄이며 맹추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