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앞줄 가운데) SK그룹 회장이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3' 내 SK텔레콤 전시관을 방문했다. 앞줄 오른쪽은 유영상 SK텔레콤 사장./뉴스1

지난 8일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한 SK텔레콤의 보도자료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AI(인공지능)’입니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AI를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아 ‘글로벌 AI 컴퍼니’로의 도약에 힘쓰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아직 실적에 뚜렷한 기여가 없는 ‘AI’를 보도자료에 무려 56번이나 언급했습니다. 회사명을 17번 언급한 것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입니다.

SK텔레콤의 3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매출 4조4026억원, 영업이익 498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36%, 6.96% 늘어났습니다. SK텔레콤은 국내 통신 3사 중 유일하게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증가했습니다. 회사 측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사업을 포함한 엔터프라이즈 부문이 성장을 견인했다고 밝혔습니다. SK텔레콤은 보도자료에서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사업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5%, 38.7% 증가하며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엔터프라이즈 사업이 SK텔레콤의 성장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애매합니다. 올해 3분기 엔터프라이즈 부문이 매출 4006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5.8% 성장한 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는 연결기준으로 SK텔레콤 전체 매출의 9.09%에 불과한 사업입니다. 특히 회사가 자랑한 전년 대비 30%대의 성장을 보인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매출은 각각 534억원, 362억원에 그쳤습니다. 올해 3분기에 높은 성장을 보인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의 매출을 합쳐도 900억원 미만으로 전체 회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 수준입니다.

여전히 SK텔레콤 매출의 상당 부분은 이동통신에서 나옵니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이동통신 매출은 연결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60%, 별도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84.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동통신 매출에는 통신과 함께 통신 기반의 미디어, 엔터, 스토아, 구독 등의 실적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실적 보도자료에서 무엇보다 AI를 강조했습니다. 회사 측은 AI 관련 사업 매출에 대해 “AI 진단 서비스나 팀 스튜디오, 무선, 인프라, 고객센터에 AI 서비스를 접목하고 있지만, 아직 매출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SK텔레콤은 올해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계열사인 사피온이 연내 선보이는 추론용 AI 반도체 ‘X330′이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을 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지훈 SK텔레콤 AI서비스성장 담당은 “AI 비서 서비스 ‘에이닷’은 지난 9월 정식 출시 이후 연말까지 추가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면서 “수면 관리, 포토 프로필 기능 등을 묶어 구독형 수익 모델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업이 실적을 발표하면서 미래 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통신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AI를 이 정도로 강조하는 것은 유영상 사장의 지상 과제가 ‘글로벌 AI 컴퍼니’로의 전환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룹 미래 먹거리로 AI 사업을 직접 챙기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 회장은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3′ 내 SK텔레콤 전시관을 방문, “SK텔레콤이 통신회사에서 AI 컴퍼니로 전환하고 있는데, 그간 키워온 기술을 다른 영역과 융합해 사람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사내게시판을 통해 “글로벌 AI 컴퍼니로의 전환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SK텔레콤은 이러한 도전을 성공시킬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그룹 총수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유영상 사장은 지난 9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AI 인프라, AIX(인공지능전환), AI 서비스 등 3대 영역으로 구성된 ‘AI 피라미드 전략’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AI 관련 투자를 3배로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2028년까지 25조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을 향한 그룹 총수의 시선이 AI로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기업의 성과는 실적으로 이어져야지, 단순히 잘 될 것이라는 신뢰만 줘선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