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막기 위해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가운데 엔비디아가 중국 맞춤형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다시 출시할 계획이다. 수출길이 막힌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즉각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새 AI 반도체를 마련한 것이다. 생성형 AI 두뇌 역할을 하는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는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를 인용해 엔비디아가 신규 칩 HGX H20, L20 PCIe, L2 PCIe를 만들어 이르면 오는 16일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규 칩엔 AI 작업에 쓰이는 엔비디아의 최신 기술이 대부분 포함돼 있지만, 강화된 미 제재에 따라 일부 컴퓨팅 성능 측정값은 감소했다고 세미애널리시스는 분석했다.
미 대형 은행 웰스파고의 애런 레이커스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새로운 칩 3개 모두 컴퓨팅 성능이 규제 기준이 되는 상한선을 밑도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중 하나는 애매한 영역에 속해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할 것"이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새 GPU 도입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엔비디아가) 미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 대해 의문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미 정부의) 추가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엔비디아는 이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지만, 업계는 엔비디아의 중국 의존도를 고려할 때 빠른 대처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달 17일 미 상무부는 최첨단 AI 칩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은 AI 칩까지도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용으로 만든 A800과 H800 칩마저도 중국에 팔지 못하게 됐다. 그간 엔비디아는 첨단 AI 칩 A100·H100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10~30% 낮은 A800과 H800 칩을 개발해 중국 기업에 공급해 왔다. 엔비디아는 이 두가지 칩 외에도 지난 8월 발표한 게임용 고사양 칩 L40S도 규제 영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미 상무부가 대중 수출 규제를 매년 1회 이상 업데이트해 허점을 막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중국 점유율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70억달러(약 9조2000억원) 규모의 중국 AI 칩 시장은 엔비디아가 9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미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 기업들은 AI 칩을 개발해 자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중국 최대 검색업체 바이두는 엔비디아 칩을 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자국산 칩 주문을 늘리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 7일 바이두가 화웨이에 AI 반도체 1600개를 주문했으며, 그중 1000개를 이미 납품받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