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2010년 3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 서비스 1년여 만에 가입자 1000만명을 확보했다. 당시 통신사들이 유료로 제공하던 문자메시지를 무료 서비스로 대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카카오톡으로 일어선 카카오는 전방위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고, 쪼개기 상장, 공정거래법 위반, 독과점 논란, 시세조종·분식회계 의혹 등으로 수사·금융당국의 압박을 받으며 사면초가에 빠졌다. 조선비즈는 카카오가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진단해본다.[편집자주]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는 지난해 3월 카카오벤처스를 상대로 “성과급(598억원)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카카오 대표에 취임하기 전인 2012년부터 2015년 사이 카카오벤처스의 대표를 맡았다. 임 전 대표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2021년 10월 청산된 카카오벤처스의 첫 펀드 케이큐브제1호투자조합펀드가 사전에 약속한 성과급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성과급 지급) 계약이 주주총회 등의 결의를 거치지 않아 유효하지 않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카카오와 임 전 대표의 다툼은 오늘날 카카오가 처한 모습을 대변한다. 바람 잘 날 없는 회사는 안팎에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전·현직 임직원은 본인 몫 챙기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없는 회사’로 만들어보겠다”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기업가정신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회사 자원의 20~30%는 이익이 안나도 혁신적인 서비스 등에 투자해야 하는데, 지금 카카오 임원들은 ‘내 몫’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우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수평적 조직문화 ‘임직원 관리’에 허점
카카오는 국내 다른 기업과 달리 유독 수평적 조직문화를 강조해왔다. 상명하복식 조직 운영에서 벗어나 ‘카카오스러움’을 앞세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사내에선 영어이름을 쓰고, 그룹이나 계열사는 ‘공동체’라고 부른다. 김범수 센터장은 브라이언,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사이먼’으로 불리며 카카오 직원들은 ‘크루’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직문화는 임직원 관리에 허점을 보였고, 도덕적 해이와 잦은 이직 등으로 안팎에서 구설에 올랐다. 2021년 당시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는 일부 임원들과 함께 카카오페이 상장 한달여 만에 스톡옵션으로 취득한 주식 900억원어치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했다. 상장 직후 최고경영자(CEO)가 회사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는데, 이는 ‘먹튀 논란’을 불러왔다. 이 때문에 류 전 대표는 카카오 공동대표로 내정됐다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2022년 초 대표이사로 내정된 후 “대표이사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한다면 행사가를 15만원 아래로 설정하지 않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사내게시판에는 “카카오 주가가 15만원이 될 때까지 연봉과 인센티브 일체를 보류하며 최저임금만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취임 6개월 만에 사임한 그는 스톡옵션 행사로 94억원의 차익을 챙겼고,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한 후에도 카카오 상근고문으로 재직하며 2억50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지난 9월에는 김기홍 카카오 전 재무그룹장(CFO)가 법인카드로 1억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구매해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일탈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계열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상황에서 벌어져 충격을 줬다.
◇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절박함 없어”… 기업 규모에 맞는 거대한 혁신 추구해야
김범수 센터장은 지난 2020년 3월 카카오톡 출시 10주년을 기념해 전 직원에게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카카오의 10년이 ‘좋은 기업(Good company)’이었다면 향후 10년은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으로 이끌고 싶다”라고 했다.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찾아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이 이제 카카오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카카오에는 과거와 같은 기업가정신이 실종됐고, 임직원 또한 창업 초기와 같은 도전정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김준익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카카오는 창업자의 강력한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상호작용하게 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면서 “(카카오와 같은) 대기업에서 기업가정신은 경영진의 리더십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 개개인의 ‘사내기업가정신’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전략적 비전을 세우고 이끌면, 임직원 역시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듯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카카오 외부에는 좋은 복지와 문화가 알려져 있는데 사실 내부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면서 “카카오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기반으로 더 높은 연봉을 받고 다른 기업으로 이직을 시도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금융공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카카오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4.9년이다. 경쟁사인 네이버는 5.99년이다. IT업계 특성상 이직이 잦지만 최근 사업 확장으로 유입된 직원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카카오 임직원의 급여 수준은 최근 3년간 급속도로 높아졌다. 실제 카카오 임직원의 평균 급여는 2019년 말 8000만원에서 지난해 말 1억3900만원으로 70% 이상 늘었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카카오 정도의 기업이라면 구글처럼 5~10년 장기 프로젝트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거대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오늘날 카카오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 데는) 김범수 센터장도 각 계열사에 단기 매출이나 이익 목표의 핵심성과지표(KPI)만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