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SMIC 공장 내부./SMIC 제공

미국 기업들이 독식해온 반도체설계자동화(EDA)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EDA 툴 판매를 금지한 이후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중국산 EDA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중국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매출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8일 대만 주요 언론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속에 EDA 기업들의 연구개발(R&D)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EDA 툴 매출 규모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와 짝을 이뤄 삼성전자, TSMC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기도 하다. 기술력 측면에선 업계 3강으로 꼽히는 시높시스, 케이던스, 지멘스에 비해 열악하지만 레거시 공정(구공정)을 중심으로 점점 존재감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EDA는 반도체 집적회로(IC) 디자인을 설계·검증할 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칩을 만들기 전에 다양한 회로 설계를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최적의 생산 경로를 미리 예측해 개발과 양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정립할 수 있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1000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칩에 집적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EDA 없이는 칩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통적으로 EDA 분야는 미국 기업들의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업계 최강자로 꼽히는 시높시스를 비롯해 KLA, 케이던스 등 미국 기업이 시장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독일 지멘스, 네덜란드 ASML 등 유럽 기업도 일부를 담당해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회사의 경우 시높시스, 케이던스, 지멘스의 소프트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EDA 기업들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수출길이 막히자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EDA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가격이 치솟고 있는 EDA 시장에서 시장 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을 제안하고 있다”며 “기술력 측면에선 미국 기업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성비가 고려되는 영역에 사용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새롭게 삼성 파운드리의 협력사가 된 엠피레안(Empyrean), 프리마리우스(primarius), 엔타시스(Entasys) 등의 중국 기업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들 기업은 1개의 라이선스를 구매하면 다수의 라이선스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초기에는 아예 라이선스 비용을 면제하는 방식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도 독자 EDA 기술을 확보하고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6년 ‘13차 5개년 국가 전략 신흥산업 발전 계획’부터 EDA 발전을 명시한 바 있다. 상하이와 베이징, 광둥 등 주요 지방 정부도 EDA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상하이는 IC 산업을 중점 육성 산업으로 지정하고 EDA·IP(지식재산권) 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신규 투자 30% 지원을 비롯해 기업 보조금과 R&D 지원, 전문대학의 인재 양성 강화 등을 담기도 했다.

앞서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7나노 칩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중국 최대 EDA 기업인 엠피리언(Empyrean)과 협업했다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설립 이후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엠피리언의 최고경영자(CEO)는 양샤오동(杨晓东)으로 세계 최대 EDA 기업 시놉시스 엔지니어 출신이다. 엠피리언은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공식 파트너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