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원세미콘 대표./전병수 기자

“지금까지 RCD(레지스터링 클럭 드라이버)칩은 전 세계에서 미국, 일본, 중국 등 3개 기업이 생산해 왔습니다. 원세미콘은 삼성전자 출신 개발자들이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전문성을 무기로 4년 만에 DDR4용 RCD칩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3년 후 RCD칩 시장에서 세계 1등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RCD칩은 D램용 고속신호 전달 칩으로 D램과 중앙처리장치(CPU) 사이에서 CPU로부터 나오는 명령과 신호 등을 다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서버용 D램 모듈에 적용되는 필수 부품이기도 하다. RCD칩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미국 램버스, 일본 르네사스, 중국 몬타지 등 3곳뿐이다. 현재 8000억원 규모인 RCD칩 시장은 인공지능(AI) 시장 성장에 따른 D램 수요 확대로 5년 후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한국에서 창업한 팹리스(반도체설계) 기업 원세미콘은 삼성전기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김창현(62) 대표가 이끌고 있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석사를 받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전자공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전기로 옮기기 전에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D램 개발팀장을 맡았다. 그는 세계 최초 1기가헤르츠(GHz) 램버스 D램 개발로 초고속 D램 시대를 개척했고, DDR2·DDR3 제품 선행 개발로 고성능 제품을 구현했다. 삼성의 기술을 대표하는 인력에게 부여하는 최고의 명예인 삼성 펠로우에도 선정됐다.

지난달 2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세미콘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RCD칩은 D램에 탑재되는 필수 부품인 만큼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전문성 없이는 제대로 된 제품을 개발할 수 없다”면서 “삼성전자 출신 개발자들과 석·박사 출신 연구진들이 힘을 모아 빠른 시일 내에 RCD칩 개발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 말 DDR4용 RCD칩 양산을 시작해 아직 매출이 크지 않지만 DDR5용 RCD칩도 개발했고 반도체 업황도 회복되고 있어 내년부터 매출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국내에서 유일하게 RCD칩을 개발하고 있다. RCD칩 양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RCD칩은 D램에 탑재되는 부품인 만큼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삼성전자 출신 개발자들과 석·박사 학위를 보유한 연구진 등 우수 인력 덕분에 서버용 DDR4 RCD칩을 개발할 수 있었다. 반도체를 양산하기 위해서는 개발 능력도 중요하지만 설계-제조-후공정 및 테스트 등 전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반도체 성능을 직접 테스트했던 경험을 보유한 직원들이 개발에 참여, 반도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다.”

—서버용 D램 DDR5 RCD칩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국내 주요 고객사 2곳과의 부품 인증 작업이 시스템 동작 검증까지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 연내 인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내년 초 양산을 기대하고 있다. DDR5는 DDR4와 비교할 때 제품 동작이 고속화되면서 기술 난이도가 증가했다. 그렇다 보니 고객사에서도 제품의 품질과 신뢰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DDR5 4800Mbps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는 DDR5 5600Mbps 제품을 개발해 검증하고 있다.”

—DDR5 수요가 서버 시장에서 확대되고 있다. RCD칩 시장 지형에도 변화가 있는지.

“지난해 하반기부터 DDR4의 누적 재고가 소진되는 중이다. 다음 세대인 DDR5를 탑재한 고성능 서버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DR5 수요 증가에 RCD칩도 연계된다. AI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RCD칩 수요도 확대될 것이다. 원세미콘이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DDR4 시대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DDR5 시장에서는 확실히 지형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램버스, 일본 르네사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차별점은.

“후발주자라 어려움이 있지만 4년 만에 DDR4 RCD칩 제품을 양산해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경쟁사 대비 저전력 특성이 우수하며, 이는 고성능을 지향하는 서버 시장에서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국내에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고객사 요구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소통도 용이해 RCD칩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된다.”

—향후 매출 목표는.

“RCD칩은 수요가 확대되는 추세라 2028~2030년 사이에 2조원 규모로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 외에도 미국, 중국, 대만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려고 한다. 북미와 유럽 지역 고객사들의 제품 샘플링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오는 2026년에 2000억원 수준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RCD칩에 주력을 하고 있지만, CKD(Clock Driver)와 함께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메모리카드 분야 등으로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 CKD는 PC와 모바일 분야에서 RCD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CKD는 아직 시장 수요가 크지 않지만, 2025년부터 본격 채용될 것으로 본다.”

—정부에서 시스템 반도체 육성책을 지속해서 내놓고 있는데.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 지원책은 도움이 된다. 다만, 첨단산업의 특성상 워낙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보니, 설계 이후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통해 진행되는 제조 단계에서 큰 비용이 지출된다. 시제품을 제작해 볼 수 있는 MPW(멀티 프로젝트 웨이퍼) 프로그램 횟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 등 국산화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벤처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에도 활력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