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내년부터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될 HBM(고대역폭메모리)의 명칭을 ‘HBM3E’로 정하고 삼성전자의 5세대 HBM 제품인 ‘HBM3P’의 명칭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HBM3E는 SK하이닉스가 내세운 5세대 HBM 제품 명칭이다. 사실상 이는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를 메인 공급사로 낙점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내년부터 일제히 5세대 HBM 제품 양산에 돌입한다. 내년 HBM 시장은 올해보다 2배가량 성장할 전망이며, 5년간 연평균 80%를 웃도는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요 메모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HBM 개발에 나선 이유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제품이다. 아직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미치지 못하지만 올해부터 인공지능(AI)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 서버에 탑재되는 HBM 가격은 기존 메모리보다 5~6배에서 최대 10배 이상 높아 수익성이 뛰어나다.
현재까지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들의 메인 벤더로 앞서 나가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가 내년부터 생성형 AI에 적용할 GPU와 짝을 이룰 5세대 HBM의 명칭을 SK하이닉스가 내세운 ‘HBM3E’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프라임(Prime)이라는 단어를 담아 HBM3P로 차별화를 시도한 삼성전자도 이에 맞게 제품명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등 해외 주요 고객사들에 메인 공급사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4세대 제품인 HBM3의 성공적인 양산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생성형 AI 상용화와 함께 고성능 서버에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 ‘H100′에 탑재되는 HBM 4세대 제품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란 가운데 대부분의 물량을 SK하이닉스가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지난 2021년 세계 최초로 4세대 제품인 HBM3을 개발해 엔비디아 등에 납품해 왔으며 현재 세계 메모리 3강 중에선 가장 안정적으로 대량 양산 체제를 구축한 기업으로 꼽힌다”면서 “엔비디아, AMD 등이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맞춘 건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비교적 진입 시기가 늦은 마이크론도 내년에 내놓을 차세대 HBM 제품을 SK하이닉스와 같은 HBM3E로 정하며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마이크론은 최근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HBM3E 샘플을 보내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고객과 함께 검증 단계에 있으며 2024년 초부터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내년에 HBM3E로 수억달러 상당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마이크론까지 본격적으로 HBM 시장에 뛰어들면서 업계 주도권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HBM 시장은 아직 초기이지만 한국 기업이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46~49%%, 삼성전자 46~49% 수준으로 전망되, 마이크론은 3~5% 수준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HBM 시장의 성장과 함께 제조사 내 매출 비중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3분기 매출에서 18% 수준을 HBM에서 거둘 예정이며, 삼성전자 역시 4분기부터는 HBM3 공급을 본격화하면서 비중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HBM의 수익률이 기존 주력 수익처인 D램보다 훨씬 높은 만큼, 영업이익도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