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초거대 AI 시대의 대한민국 그리고 AI 반도체 전쟁' 토론회가 열렸다./최지희 기자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AI 칩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과 AI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 철폐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토종 AI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AI 반도체를 활용한 서비스를 실제 생활에 도입할 수 있도록 규제가 대폭 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초거대 AI 시대의 대한민국 그리고 AI 반도체 전쟁'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하정우 네이버 AI LAB 센터장, 김형래 카카오브레인 부사장, 류수정 사피온코리아 대표,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챗봇 서비스 기업인 꿈많은청년들의 정민석 최고기술책임자(CTO), AI 포털 서비스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의 제성원 최고인사책임자(CPO), 엄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이 좌장을, 김진우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산업계 대표들은 국내 AI 반도체 기술력 수준이 AI 반도체 강국인 미국과 중국 등에 겨뤄 뒤처지지 않는 만큼, 경쟁국 수준에 준하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류수정 대표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이 워낙 커지고 있어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보지만, 한국 기업들은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조성된 생태계를 깨뜨리는 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며 "실제로 AI 반도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등 치열하게 싸움을 할 수 있는 터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류 대표는 "화웨이는 SMIC의 공정을 이용해 7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제품을 내놨고, 중국의 AI 반도체 업체 비런테크놀로지는 정부의 엄청난 투자를 받고 있다"며 "반도체 굴기를 기치로 중국 기업들은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어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 칩 실증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규모가 크지 않다"며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초기 수요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정우 센터장도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하 센터장은 "AI는 데이터 특성에 의해 결정이 되고, 데이터는 각 지역 문화와 사회, 교육까지 포괄하는 내용이 축적돼 하나의 AI가 전 세계를 커버하기는 어렵다"며 "따라서 한국 자체의 초거대 AI 생태계를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 센터장은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AI를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맺는 등 AI로 국가 간 역학 관계가 바뀌고 있어 우리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며 "AI 반도체가 일상에 녹아들어 가려면 AI 칩 설계단에서부터 서비스에서 요구될 만한 사항이 잘 반영돼야 하므로 AI 반도체와 이를 기반으로 한 클라우드가 함께 견고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의 대규모 프로젝트 예산이 필요하다고 하 센터장은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소프트뱅크에 550억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했고, 영국에서도 1조6000억원을 투자했다"며 "AI를 공공 부문에 활용해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이와 관련한 국내 내년 예산은 110억원에 불과해 실제 AI를 공공 분야에 활용하기엔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규제가 AI를 활용한 서비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형래 부사장은 "AI를 사용해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말로 카카오 택시를 부르고 목적지를 설정하는 미래 상황을 가정해 보면,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을 비롯한 각종 규제 하에선 '동의하시겠습니까'가 수차례 뜨고 다른 앱이 뜨는 등 허들이 많을 것"이라며 "이런 규제 하에서 AI 서비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생성 모델을 잘 만들고 더 저렴하게 추론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을 확보해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규제에 막혀 서비스를 할 수 없어, 규제 철폐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민석 CTO도 "한국의 IT 규제는 화이트리스트 방식으로, 오로지 정해진 틀에서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끔 돼있다"며 "AI 분야에서 지금처럼 규제가 이어진다면, 규제에 막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금방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센터장도 "규제는 게임의 룰 안에서 혁신과 성장을 도모하게끔 하는 게 기본 철학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박성호 협회장은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을 보면, 미국은 지켜보다가 문제가 되면 개입하는 문화가 조성됐고, 중국은 정부가 앞서 집단 지원에 나서 AI 산업의 핵심인 대규모 데이터가 쉽게 쌓이고 있다"며 "한국은 데이터 수집량 자체가 적은데 그마저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수집이 막히는 경우가 과하게 많아, 반드시 필요한 규제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규제가 무엇인지 일제히 살펴봐야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