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삼성 회장과 리트리버. 이 회장은 생전 애견가로 유명했다./삼성전자 제공

'왈왈!'

19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에버랜드 옆 언덕 부지에서 크고 작은 리트리버 30여마리가 시각장애인의 눈과 발이 되기 위한 안내견 교육을 받고 있었다. 태어난지 2달된 예비 안내견부터 시각장애인 곁을 10여년간 지키다 은퇴한 안내견이 한 데 모여 있는 이곳은 한국의 안내견 문화가 태동한 곳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대부분이 이곳에서 양성된다.

삼성은 이날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사업 3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삼성의 안내견 사업은 1993년 6월 '신경영'을 선언한 고(姑) 이건희 선대회장이 그해 9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기업이 운영하는 안내견학교는 전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이날 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참석해 이 전 회장의 유산을 기렸다.

30년 전 '안내견' 개념이 생소했던 한국에서 이 회장은 "진정한 복지 사회가 되려면 장애인을 사회 일원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며 안내견 사업에 나섰다. 당시 삼성이 개를 기른다고 알려졌을 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소문난 애견가이기도 한 이 회장은 "비록 시작은 작고 보잘것 없지만, 이런 노력이 사회 전체로 퍼져 우리 사회의 의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보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19일 오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이 장애물을 피해 보행하는 모습./최지희 기자

1994년 첫 안내견 '바다'를 시작으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매년 12~15마리를 무상 분양해 지금까지 280마리를 길러냈다. 지금은 76마리가 시각장애인 곁을 지키며 안내견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 마리의 안내견이 탄생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갓 태어난 예비 안내견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보살핌을 받고 생후 2개월이 되면 자원봉사자의 가정에서 1년 동안 머물며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이를 돕는 자원봉사자를 퍼피워커라고 한다.

이날 행사에서 퍼피워커들은 1년간 돌보던 안내견 11마리를 시각장애인에게 넘겨줬다. 강아지와 이별하게 된 퍼피워커들이 소감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이 회장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이 회장과 홍 전 관장은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시각장애인 4명의 축하 공연을 손뼉을 치며 감상했다.

19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열린 30주년 기념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참석해 안내견을 분양받은 시각장애인 파트너의 소감을 듣고 있다./최지희 기자

행사에선 7년간 시각장애인의 곁을 지키던 안내견의 은퇴식도 열렸다. 은퇴한 안내견은 다른 봉사자에게 입양돼 노후를 보낸다. 현재까지 이곳 안내견을 돌본 봉사 가정은 2000여가구에 이른다. 시각장애인으로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는 유석종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직원은 "시각장애인이 사회 활동을 어느 정도 하느냐가 복지 사회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며 "많은 봉사자들의 도움 덕분에 학교가 성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프로세스가 전무해 외국에서 교육 방법을 배워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본에서 국내에 안내견 사업을 배우러 온다"고 말했다.

예비 안내견들. /삼성전자 제공

삼성은 앞으로도 안내견학교를 꾸준히 운영하며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올해 이 안내견학교는 견사 크기를 2배로 확장했고, 시작장애인 파트너를 위한 교육 워크숍 횟수도 늘렸다"며 "새로운 30년 동안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더욱 행복한 동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