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3에 전시된 반도체 웨이퍼./뉴스1

미국, 영국 등 해외 기업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반도체 설계자산(IP) 분야에 한국 기업들이 잇달아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지식 산업으로 ‘굴뚝 없는 공장’으로 불리는 반도체 IP 시장은 높은 진입 장벽으로 국내 기업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분야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 시장 개화에 따른 수요 다변화로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IP 기업들이 시스템 반도체, 차세대 메모리, 인터페이스,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IP를 내놓으며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을 비롯해 AMD, 엔비디아 등 글로벌 팹리스와 파트너십을 진행 중이다.

반도체 IP 회사들은 수십 개의 IP 블록(Block)으로 이뤄진 칩에 필요한 설계자산을 글로벌 회사의 로드맵에 따라 선행 개발을 진행한다. 모바일, PC, 서버, 자동차 등에 탑재되는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IP 확보가 필수적이다. 반도체 IP를 이용할 경우 설계자는 복잡한 회로를 좀 더 쉽고 빠른 시간 내에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 제조, 판매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반도체 IP 회사들은 팹리스가 칩을 설계하기 이전부터 다양한 IP를 개발해 놓고 필요한 블록을 공급하는 만큼 팹리스(설계전문회사)를 비롯해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혹은 직접 반도체를 개발하고자 하는 IT 기업 등 수요가 커지고 있다. 특히 AI 서비스 수요로 칩이 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면서 더 많은 반도체 IP가 빠른 시간 내에 개발되어야 하는 시장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조만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퀄리타스반도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페이스 IP 기업으로, 자율주행차, AI 등에 활용되는 SoC(시스템온칩) 모듈 내 데이터가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돕는 초고속 통신 기술 솔루션을 제공한다.

2017년 삼성전자 출신 공학박사들이 설립한 퀄리타스반도체는 초고속 인터페이스 IP 설계 분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부터 삼성전자 파운드리 협업 생태계인 ‘SAFE IP’ 핵심 파트너로 선정돼 각종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IP 양산 이력을 확보했다.

창립 7년째인 올해 상장 예비 심사를 신청했으며, 올해 3분기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상장 이후 공모자금은 고부가가치 IP 개발 및 IP 포트폴리오 강화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직원 수가 150명을 돌파했으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매출에서 2배 이상 증가한 100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파네시아가 'FMS 2023'에서 공개한 자체 개발 CXL IP가 적용된 '멀티-테라바이트 메모리풀 프레임워크' 솔루션 실물 사진./파네시아

카이스트 교원 창업 기업으로 시작해 최근 열린 세계적인 메모리 기술 전시회 ‘플래시 메모리 서밋(FMS) 2023′에서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기술을 시연해 주목을 끈 파네시아는 내달 직접 설계한 CXL 3.0 칩 샘플을 내놓으며 글로벌 IT 기업들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모두 연구개발 중인 CXL 3.0은 가장 진보한 형태의 메모리 아키텍처로 메모리 반도체를 패브릭(Fabric) 형태로 연결해 거대한 공유 메모리 풀(pool)을 형성하는 기술이다.

이미 국내외 거대 고객사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IP 산업을 전개하고 있는 오픈엣지테크놀로지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 NPU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잇달아 공급 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NPU 분야에서도 새 IP를 검증해 공급할 예정이다.

지난달 출범한 자회사 오픈엣지스퀘어를 통해 오픈엣지테크놀로지는 차세대 ‘캐시 일관성 네트워크 솔루션’ IP를 개발해 2026년까지 출시한다는 목표다. 반도체가 고성능이 될수록 설계가 복잡해져 프로세서 간 데이터 불일치로 연산 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오픈엣지가 개발하는 IP는 향후 고성능 Al 반도체 등 멀티코어 프로세서 기반 반도체 설계에서 연산 오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2003년 설립된 영상 시스템 반도체 IP 기업인 칩스앤미디어도 하반기에 신규 NPU IP를 내놓고 고객사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현재 서버, 자동차 부문의 대형 고객사들과 테스트 과정을 거치고 있다. 성능 검증 결과에 따라 내년부터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