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중국 화웨이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화웨이 제공

애플이 아이폰15 공개를 목전에 두고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와 중국 정부의 아이폰 제재라는 겹악재를 맞닥뜨렸다. 중국 시장이 아이폰 출하량의 22%를 차지하는 만큼, 이번 사태로 애플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애플을 큰손 고객으로 둔 국내 부품업체들도 계절적 성수기를 앞두고 실적 타격 우려가 나온다.

◇ ‘애국 소비’ 나선 中 소비자... “애플에 심각한 도전”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말 화웨이가 아이폰15 공개를 2주 앞두고 내놓은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 시리즈는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출시 가격이 6999위안(약 127만원)인 메이트 60 프로는 화웨이 공식 판매처와 온라인 휴대폰 판매 사이트에서 매진되고 화웨이 자체 온라인 쇼핑몰에서만 예약 판매 중이다. 이에 더해 화웨이는 지난 8일 ‘메이트 60 프로 플러스’와 폴더블(접이식) 스마트폰 ‘메이트X5′를 추가로 내고 사전 주문을 받고 있다. 업계는 메이트X5 폴더블폰에도 7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급 프로세서가 쓰였다고 본다.

SCMP는 중국 싼리툰의 한 전자제품 소매점 직원을 인용해 현지 소비자들이 이른바 ‘애국 소비’에 나섰다고 전했다. 미 제재에 맞서는 본토 기업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화웨이 휴대폰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는 설명이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의 토비 주 연구원은 “화웨이의 새 휴대폰은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며 화웨이가 공급망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해 제품을 출하하는지가 향후 경쟁에서 핵심이 되리라고 분석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정부는 중앙정부 기관 공무원들에게 아이폰을 포함한 해외 브랜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국영기업과 여타 정부 관련 기관에도 금지령을 확대하고 있다. 일각에선 공무원의 가족들도 아이폰을 못 쓰게 막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통계 당국에 따르면 국가 소유 기관 근로자는 2021년 기준 약 5630만명이다. 이 여파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중국의 연간 아이폰 판매량이 연간 500만~1000만대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중국에서 팔린 아이폰은 4980만대. 중국 아이폰 수요의 최대 20%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 리서치기업 오펜하이머의 마틴 양 연구원도 “중국 정부의 아이폰 사용 금지 조치와 화웨이 휴대폰 출시는 아이폰에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2024년 애플 아이폰 출하량이 1000만대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 부품사, 하반기 ‘아이폰 특수’ 앞두고 암초… “불안 심리 과도” 해석도

애플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는 국내 부품업체들도 피해 영향권에 들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3~4분기는 아이폰 부품 공급업체들의 황금기인데,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기도 전에 악재가 나타나 애플발 연쇄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이노텍과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아이폰15 특수를 톡톡히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이들은 아이폰15 고급 모델 부품의 상당수를 공급한다.

아이폰15 프로 맥스(추정)의 캐드(CAD) 기반 렌더링 이미지./IT 팁스터 '아이스유니버스' 트위터

아이폰에 고성능 카메라모듈을 공급하는 LG이노텍은 애플 매출 비중이 75% 이상을 차지한다. 아이폰15부터는 기존 카메라모듈에 더해 판매 단가가 높은 폴디드 줌 신형 카메라모듈을 독점 공급해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15 출하 물량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 올 4분기에 LG이노텍이 역대 최고 실적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며 “이 전망엔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기대도 더해졌던 터라 중국 아이폰 출하량이 실제로 많이 줄어든다면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아이폰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공급한다. 아이폰15 전 제품의 절반 이상엔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이 적용될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제품보다 패널 공급 점유율을 2배 늘려 고급 모델인 아이폰15 프로와 프로 맥스 패널 공급을 맡았다. 아이폰 특수에 힘입어 LG디스플레이는 올 4분기 7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이 예상됐으나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것이다.

일각에선 애플을 비롯한 관련 기업들의 피해가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은 아이폰 최대 생산지로 관련 종사자만 수백만명에 달하는데, 악화한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정부가 자국 근로자들의 피해를 적절히 관리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중국의 아이폰 사용 금지 조치는 우려 대비 엄격한 조치가 아닐 수도 있다”며 “애플이 중국에서 아이폰을 현지 생산하며 창출하는 일자리 수가 700만개에 달해 중국 실업률 급증과 부진한 내수 경기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정부가 아이폰 금지령을 강화할 경우 중국 내 아이폰 공급망에 미칠 타격과 고용 악화 등 정치적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번 조치가 공무원과 국유 기업 판매에만 영향을 미친다면 아이폰 판매량 감소분은 2% 미만이겠으나, 중국 민간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