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사가 지난해 9월 내놓은 'e심(eSIM)'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e심은 휴대폰 1대에서 2개의 번호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개통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애플 아이폰이 듀얼메신저 기능을 제한해 1개의 카카오톡 계정만 쓸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24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국내 무선 이동통신 가입자 가운데 e심 사용자는 3%에 못 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통신 3사는 e심 사용자 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전체 무선 통신 가입자 8000만명 중 e심 사용자는 100만명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은 통신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 가입 정보 등이 담긴 유심(USIM)칩을 구입, 스마트폰에 장착해야 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 구입하거나 우편으로 배송받아 스마트폰 슬롯에 넣는 방식이다. 대리점이 없는 알뜰폰의 경우 편의점에서 유심을 구입해 인터넷으로 직접 개통해야 한다.
◇ 유심 대비 3분의 1 가격, 통신사 갈아타도 그대로 사용
반면 e심은 별도의 칩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제조사가 휴대폰을 만들 때 e심칩을 휴대폰 안에 이미 탑재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통신사가 제공한 QR코드를 스캔, 프로파일(통신사 네트워크 접속 정보)을 내려받아 설치하면 곧바로 원하는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모든 휴대폰에 e심이 탑재돼 있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10월 출시한 갤럭시Z폴드·플립4 이후 플래그십 모델에 e심을 탑재했다. 폴드·플립4, S23 시리즈, 폴드·플립5 등이 대표적이다. 애플 아이폰은 2018년 나온 아이폰XS 이후 모든 모델에서 e심 사용이 가능하다.
e심은 가격이 저렴하다. e심 프로파일을 내려받는 비용은 2750원으로, 7700~8800원에 판매 중인 기존 유심의 3분의 1 수준이다. 통신사를 바꿔도 기존 e심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통신사를 갈아탈 때마다 새로운 유심을 사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e심 사용으로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다.
e심의 가장 큰 장점은 휴대폰 1대에서 2개의 번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통신사 요금제에 가입할 수도 있다. SK텔레콤과 KT 요금제를 휴대폰 1대에서 쓰거나, 통신 3사와 알뜰폰 요금제를 동시에 쓰는 식이다. 그동안은 업무용과 개인용 번호를 쓰기 위해 휴대폰 2대를 각각 가지고 다녀야 했지만, e심을 이용하면 휴대폰 1대로 업무용과 개인용 번호를 동시에 쓸 수 있다.
◇ 프로파일 설치 어렵고 아이폰서 카톡 1개 계정만 가능
그럼에도 e심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지 않은 건 e심 개통이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손톱 크기의 칩을 구입해 넣기만 하면 되는 유심과 달리 e심은 프로파일을 내려받고, 개인정보를 직접 입력해야 한다. 통신 3사 셀프 개통과 비교해 더 복잡하다. 휴대폰 사용이 서툰 중장년층에게 e심은 통신사 대리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어려운 개통 방식이다. e심 사용자 대부분이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고 셀프로 개통한 경험이 있는 20·30대 젊은 층인 이유다.
애플 아이폰에서 듀얼메신저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e심 활성화를 막는 걸림돌이다. 듀얼메신저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휴대폰 1대에 2개 설치해 사용하는 기능이다. 듀얼메신저 기능이 있으면 각각의 번호 인증을 거쳐 2개의 카카오톡 계정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은 삼성 갤럭시폰에서는 가능하지만 애플 아이폰에서는 불가능하다. 애플이 듀얼메신저 기능을 막아놨기 때문이다. 아이폰 1대에서 2개 번호를 쓸 수는 있지만 카톡은 1개 계정으로만 사용할 수 있어 카톡 의존도가 높은 국내에서는 반쪽짜리 서비스라는 평가를 받는다.
통신 3사는 e심 요금제를 판매하고 있지만, 기존 유심 대비 수익성이 낮아 주력 상품으로 내놓지는 않고 있다. e심 요금제는 월 8800원에 부가 회선용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데 기존 유심 요금제 대비 절반 가격으로 수익성이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