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KT 이사회가 차기 CEO(최고경영자)로 김영섭 전 LG CNS 사장을 지명한 후, 김 내정자가 본부별 업무보고를 받으며 현안 파악에 나서고 있다. 김 내정자는 특유의 '디테일·실질주의' 경영에 시동을 걸면서 조용히 업무파악에 집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16일 KT 안팎에 따르면 김 내정자는 최종 CEO 후보로 선임된 후 우선순위에 따라 주요 사업본부, 지역 광역본부, 스탭본부 등의 순으로 보고를 받고 있다. 비서실격인 CEO 지원담당에서 업무보고를 지원하고 있는데, 보고 장소는 인원에 따라 회의실 내지는 접견실 등 공용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이달 30일 임시 주주총회 표결을 통해 참석 주식 60% 이상의 찬성을 받으면 최종 대표로 확정된다.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외국인 주주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물론 KT노동조합도 김 내정자 선임 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밝혔다.
◇ "인수위 통하지 않고 직접 업무 파악"…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 반영
김 내정자는 이달 30일 임시주총에서 공식 취임하기 전까지 시간을 회사 업무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전망이다. 그동안 다른 CEO 내정자들이 10~50명의 태스크포스(TF) 격인 인수위원회를 꾸려 경영계획을 세운 것과 달리 김 내정자는 부문 산하 본부 단위로 사업을 파악해나가고 있다. 일정 기간 소수의 인수위를 통해 의견을 듣고 경영계획을 구상하기보다 사업을 쪼개 스스로 하나하나 알아나가겠다는 그의 디테일함과 신중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업무보고에서 넘어갈 부분은 '좋습니다' '그렇군요'라고 말하며 넘어가지만, 의문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딥 다이브(Deep Dive)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궁금한 것은 자세히 끝까지 묻는다는 것이다. 아직은 업무를 파악하는 단계인 만큼 질책성 발언은 크게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업무보고에 들어간 사람들은 정보통신산업(ICT)이나 통신업계에 오래 종사한 만큼 일하는 방법을 안다는 평이 많고, 합리적이고 스마트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 깐깐하면서도 실질주의 리더십… "군기반장으로 실적 낼 것"
업계에서는 김 내정자가 LG 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 상무를 거쳐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LG CNS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보여준 리더십이 KT와 어떤 궁합을 보여줄지 주목하고 있다.
내정자로 선임된 약 2주간의 활동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업무에 대해서는 매우 디테일하다는 평을 받는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한 만큼 실적, 성과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따져보는 성향이다. 그를 접해본 한 임원은 "조직에 누수 현상이 없는 지를 살펴봐야 하는 CFO 출신인 만큼 냉철할 때는 무섭고, 매우 깐깐하다"며 "하지만, 그 외 상황에서는 인자하다는 평이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군기반장 역할을 확실히 하며 실적을 잘 관리해 나갈 것"이라 했다.
김 내정자가 LG CNS 사장으로 취임한 다음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술역량 레벨' 평가 시험을 도입한 것은 그가 얼마나 실질주의를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역량 레벨' 평가 제도는 각 분야 최고 외부 IT전문가들이 출제한 시험을 토대로 기술인증시험을 보게 하고, 산업 업무와 공통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종적인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김 내정자는 당시 기술역량 레벨을 연봉 체계에 50% 반영했다. 임금피크제 대상 전문가 중에서 기술 역량이 뛰어난 사람은 연봉 삭감 없이 임금을 보상받고, 정년이 지나도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직접 나서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30회 이상 열고 설득했다. 이는 최고 기술자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연봉이나 인사평가 기준도 기술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KT에서도 성과를 평가할 시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관계자는 "LG CNS는 사업군이 KT보다는 시스템통합(SI)에 집중된 만큼 기본을 갖추자는 차원에서 시험을 봤을 수 있겠지만, KT는 사업 범위가 넓어 성과 시험제도를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 취임 후 첫 메시지 기대… CEO 공백 다잡고 체질 개선 나설듯
김 내정자가 취임 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지도 관심이다. 그는 동양철학 한학에 관심이 많아 임직원과 대화할 때 시의적절할 고사성어를 잘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내정자는 KT CEO로 취임한 후에도 장기간 CEO 공백으로 놓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성과를 내자며 실증주의를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2015년 12월 LG CNS로 취임한 직후 임직원들에 보낸 이메일에서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고 긴장의 끈을 다시 한번 조여야 한다"며 "불필요한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실질적인 일에 더욱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느슨해진 것을 팽팽히 다시 고치자는 뜻의 '해현경장(解弦更張)', 일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실질에 힘쓰는 것이라는 뜻의 '사요무실(事要務實)' 사자성어를 풀어담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내정자가 LG 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을 거친 구조조정 전문가인 만큼,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신중한 그의 성격을 감안하면 업무를 온전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IT를 모르는 사람이 아닌 만큼, 내부적으로 견제하는 분위기도 있다"면서도 "정부가 통신업계에 '이권 카르텔'이 있다고 지적한 만큼 업계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이슈도 많아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