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가상인간(버추얼 휴먼) 이솔, 로지, 수아 등의 활동이 뜸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가상인간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지닌 인공지능(AI) 캐릭터로, 로봇과 달리 실체 없이 소프트웨어적으로만 구현됐다.
최근 몇 년 간 국내에 소개된 가상인간만 150명이 넘고 광고업계에서 실제 연예인을 대신할 수 있었던 존재로 주목받았지만 인기가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가상인간 인플루언서 1호라 할 수 있는 로지는 올해 새롭게 모델로 출연한 광고가 2편에 불과하다. 2021년에는 5편, 2022년에는 6편의 광고에 출연했다. 올해 출연한 광고는 TV 영상 광고가 아닌 사진 화보 광고 뿐이다.
네이버웹툰 계열사인 로커스엑스에서 개발한 로지는 지난 2021년 신한라이프 광고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로지는 동양적인 마스크에 키가 171㎝로 서구적 체형을 지니고 여행과 서핑, 스케이트보드, 프리다이빙, 클라이밍을 취미로 하는 밝고 쾌활한 ‘Z세대 여성’이란 설정이다.
로지가 출연한 신한라이프의 첫 유튜브 광고는 공개 20여일 만에 누적 조회수 1000만뷰 이상을 기록했다. 광고 영상 속에서 숲속과 도심, 지하철 등을 오가며 음악에 맞춰 진짜 사람 모델처럼 춤을 췄다.
이후 로지는 톱스타만 찍는다던 화장품 광고와 라면 광고 모델로 발탁되는 등 가상인간 유행에 불을 붙였지만 인기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신한라이프는 최근 광고모델을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박성훈으로 교체했다.
네이버가 자이언트스텝과 공동 개발한 또 다른 가상인간 이솔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네이버 쇼핑라이브에 쇼호스트로 처음 데뷔한 뒤 벤츠 광고모델로 발탁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여행 예약 플랫폼 트립비토즈의 광고모델 외에 이렇다 할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의 손자회사인 온마인드가 개발한 가상인간 수아는 지난해 ‘한국관광공사’ 홍보 모델을 시작으로, 코오롱, SK텔레콤 광고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올해는 온마인드가 다음달 서울 코엑스에서 직접 개최하는 ‘버추얼 휴먼 크리에이션 어워드’의 MC 외에 활동이 뜸한 상태다.
이스트소프트가 지난해 9월 공개한 가상인간 백하나도 32세 브랜드 디자이너란 설정으로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클래스101의 전속 크리에이터가 됐지만, 현재까지 올라온 강의는 5개가 전부다. 당초 온라인 강의를 넘어 광고, 쇼핑,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나간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를 실행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지난 2021년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 처음 선보인 가상인간 김래아 역시 MZ세대용 마케팅·홍보에 활용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가수로 데뷔한다는 소식을 끝으로 대중에게 잊혀지고 있다.
업계에선 가상인간이 처음 나왔을 때 신기함, 신선함으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연예인보다 차별화된 매력과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중 입장에서는 가상인간이 연예인이나 일반 인간보다 차별화된 개성과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유사하기만 하니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이라며 “미국 등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상인간의 경우 각 캐릭터의 스토리텔링이 잘 돼있을 뿐 아니라, 실제 인간이 보여주지 못하는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소셜미디어 팔로어와 팬덤을 보유한 검증된 가상인간만 간추려 소개하는 사이트 ‘버추얼휴먼스’에는 200명 이상이 등록돼 있다.
일본에서는 단순히 광고 모델을 넘어 가상인간 여성과 소통할 수 있는 데이팅 앱 ‘사만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앱에는 20~30대 여성 1000여명의 프로필이 있고 이름과 사진·나이·직업·고향·취미·이상형·음주 여부 등이 적혀있다. 이 여성들은 가상 세계에서 각자 직업을 갖고 살아가면서 사용자들과 대화하고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