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법무실장./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만 ‘누누티비’로 골머리를 앓는 것이 아니다. 웹툰·웹소설업계도 ‘토끼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불법 웹툰 유통사이트 ‘밤토끼’를 표방한 ‘o토끼’ 등 유사 사이트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불법유통 대응 전담 태스크포스(TF)팀은 무단 복제 웹툰 플랫폼을 신고하기 위해 스파이처럼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잠입까지 불사하며 감시하고 있다.”

이호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법무실장(글로벌 불법유통 대응 TF장)은 지난 6일 서울 공평동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종각오피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웹툰·웹소설업계에 불법 유통 플랫폼 폐쇄는 해묵은 과제였다. 2018년 월평균 방문자가 3500만명에 달했던 국내 최대 불법 웹툰 유통사이트 밤토끼는 운영자가 구속되면서 폐쇄됐지만, 이후에도 ‘o토끼 시즌2′ 등 유사 사이트가 계속 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불법 웹툰 유통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8427억원으로 2020년 대비 53% 늘었다.

피해가 끊이지 않자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1년 업계 최초로 글로벌 불법유통 대응 전담팀 피콕(PCoK·Protecting the Contents of Kakao Entertainment)을 발족했다. 회사는 법무실 산하 TF팀에 영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전담 인력을 두고 각종 불법 사이트를 모니터링 및 신고한다. 회사가 이달 11일 발표한 ‘3차 불법유통대응 백서’에 따르면 TF팀이 지난해 11월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간 차단한 글로벌 주요 검색 사이트 및 SNS 내 불법 웹툰·웹소설은 약 1420만건으로, 2차 백서(2022년 4~11월) 당시 667만건에서 112% 증가했다.

TF팀을 이끌고 있는 이 실장은 지난 2000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법무법인 한결, 신한은행 준법지원부 등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콘텐츠 업계와의 인연은 2018년 펍지(현 크래프톤) 법무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시작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인 카카오페이지에는 2019년 입사했다.

한 불법 웹툰 유통 사이트./ 웹사이트 캡쳐

이 실장은 불법유통 문제 해결이 웹툰·웹소설 업계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작자가 개별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하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업계에서도 근무했지만, 같은 콘텐츠 업계라도 게임이나 영화의 경우 회사에 소속된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다”라며 “웹툰업계는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 개별 창작자가 아티스트로 일하고 플랫폼은 주로 유통만 담당한다. 개별 창작자가 혼자 저작권 위배 사항을 신고하고 해결하기엔 수사 과정이 복잡하다. 유통 플랫폼이 직접 보호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웹툰업계의 경우 출판사와 비슷한 계약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작가 개인이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다음 책을 출판하고 서점에 유통하듯이, 웹툰 작가는 콘텐츠 제작사(CP)와 출판계약을 맺고, CP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플랫폼과 유통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다.

웹툰의 경우 불법 복제가 더 용이하다는 점도 문제다. 이 실장은 “불법 게임 유통의 경우 해외에 불법 서버를 개설해야 하는데, 이보단 웹툰을 불법 캡쳐해 유통하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라고 했다.

콘텐츠를 손쉽게 복제·유통할 수 있다 보니 이를 공유하는 플랫폼도 블로그, 웹사이트,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다양하다. TF팀은 회원으로 위장해 각종 사이트에 잠입, 불법 유통물을 신고하고 관련 증거물을 정리한다. 최근엔 단속 범위를 티셔츠 등 불법 캐릭터 굿즈나 인쇄물까지 확장했다.

이 실장은 TF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정부가 누누티비를 폐쇄했듯이, 정부가 불법 웹툰 유통 플랫폼을 셧다운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플랫폼을 폐쇄하는 것은 정부만이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보조 역할을 기업의 임무”라고 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TF팀이 약 2500개 작품과 관련한 채증 작업을 거친 후 이를 기반으로 국내 최대 불법 웹소설 공유 사이트 북토끼 운영자들을 고소하기도 했다.

한편 콘텐츠 업계는 최근 스테이블 디퓨전 등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관련해 창작자의 저항이 거센 가운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6월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란 작품에선 그림 일부에 AI가 활용됐다는 논란이 확산하면서 AI 웹툰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실장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AI 창작물과 관련해 저작권법 개정 또는 정부부처 가이드라인 등에 따라 결정된 사항을 적극 수렴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