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의 클린룸 시설./ASML 제공

올해 중국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가 미국 제재 영향으로 작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향후 4~5년간 침체기를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한국 기업들의 실적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해졌다.

14일 조선비즈가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국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는 지난해 350억달러(44조6250억원)에서 올해 130억달러(16조5750억원) 수준으로 65% 이상 급감할 전망이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설비투자 성장률도 -11.2%로 역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장비업체들의 경우 필수 공정장비보다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ASML, 도쿄일렉트론(TEL) 등의 기업들이 공급하는 핵심 설비를 보조하는 장비들을 주로 납품해왔다. AMAT, ASML, TEL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회사들로, 앞서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재에 동참하기로 한 바 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중국 매출 비중도 감소하고 있다. AMAT의 중국 매출 비중은 지난해 3분기 20%에서 4분기 17%로 3%포인트(P) 축소됐다. 노광장비 시장 선두주자인 ASML은 15%에서 9%로 6%P 떨어졌고 TEL과 램리서치도 각각 2.1%P, 6%P 줄었다. 지난해 4분기는 미국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규제한 후 첫 번째로 맞은 분기로, 미국의 대중국 제재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매출 비중이 낮아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는 추세다.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증착기에 부가 기능을 더한 제품이나 주요 장비의 열을 제어하는 장비, 계측·검사, 세정·세척 장비를 주로 중국에 수출해왔다. 최근에는 패키징(후공정) 장비나 테스트 기기 판매도 늘고 있었다.

중국 반도체 공장의 신규 설비투자가 급감하면서 국내 장비업체들의 판로도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중국 매출 비중이 부쩍 늘었던 일부 기업은 직격탄를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소재·부품 분야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장비업체가 국내에서 조달하는 소재·부품 수가 상당한데 장비를 팔지 못하니 이들 수요도 감소 중이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글로벌 장비 회사들의 장비 납품이 제한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설비투자 규모가 줄어들면서 부수적인 공정 장비 매출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