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식 현대오토에버 대표(왼쪽)와 윤풍영 SK㈜ C&C 대표.

현대오토에버(307950)가 2027년까지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히며 IT서비스업계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만 따지면 이미 업계 3위인 SK㈜ C&C를 뛰어넘은 상태다. SK㈜ C&C는 업계 ‘만년 3위’ 굴레를 벗어나는 게 목표였으나 현대오토에버의 공격적인 행보로 오히려 존재감이 더 위태해질 전망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오토에버는 지난달 28일 ‘2023년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디지털전환(DX)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를 두 축으로 2027년까지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오토에버는 지난 2021년 4월 현대엠엔소프트·현대오트론 등과 합병했다. 합병 전에는 단순 IT서비스업체에 불과했지만 합병 이후 현대오트론의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현대엠엔소프트의 인포테인먼트 사업 등을 맡으며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 회사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현대오토에버는 합병 직후부터 서정식 대표이사가 이끌고 있다. 서 대표는 서울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UC버클리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이후 삼성물산, KT를 거쳐 현대자동차 ICT본부장을 맡았고 2021년 현대오토에버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서 대표는 취임 후 3개월 만인 2021년 7월 첫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일회성 수익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플랫폼,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형 사업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지난달 28일에는 2년 만에 다시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중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기관 투자자와 주요 애널리스트 등에게 공유했다.

우선 디지털 전환의 밑바탕이 되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CSP)와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 기업(MSP)을 모두 활용한 ‘하이브리드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의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사업 참여를 통해 스마트팩토리 솔루션도 상품화하고 있다. SDV 사업에서는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와 정밀지도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 ‘모빌진(mobilgene)’은 2026년까지 40∼50여 차종의 통합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제어기에 탑재하겠다는 목표다.

서 대표는 “2027년까지 연간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며 “이는 연 평균 14%의 성장률로, 차량 소프트웨어가 연 평균 19%, 엔터프라이즈 IT가 연 평균 1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했다. 또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을 포함해 최대 1조1000억원까지 투자할 계획이다”라며 “글로벌 인력풀도 현재 6000명 수준에서 2027년에는 8100명 수준까지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서 대표가 현대오토에버를 이끈 후 실적은 매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1년 매출은 2조703억원, 영업이익 961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각각 33%, 48% 증가해 매출 2조7545억원, 영업이익 1424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6660억원, 영업이익 3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 36.7% 증가했다.

현대오토에버의 매출은 이미 IT서비스업계 3위인 SK㈜ C&C를 제쳤다. SK㈜ C&C 매출은 별도 기준 2021년 1조8372억원, 2022년 2조1968억원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각각 1706억원, 2396억원이었다.

그래픽=정서희

SK㈜ C&C는 윤풍영 대표이사가 작년 말부터 이끌고 있다. 윤 대표는 SK텔레콤 최고재무책임자(CFO),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한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IT서비스업계에서 재무 전문가가 대표를 맡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예컨대 황성우 삼성SDS 대표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을, 현신균 LG CNS 대표이사는 최고기술책임자(CTO), D&A(데이터분석&인공지능) 사업부장 등을 거쳤다.

재무 전문가가 대표이사를 맡은 만큼 SK㈜ C&C는 수익성 개선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SK㈜ C&C의 영업이익은 2019년 2721억원에 달했으나 최근 들어 주춤한 상태다. SK㈜ C&C 관계자는 “자회사 에센코어 실적을 합산하면 2022년 매출은 3조161억원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오토에버의 경우 서 대표가 직접 나서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한 반면, 윤 대표는 취임 후 반 년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목표나 사업 청사진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부회장이 SK㈜ C&C 대표이사를 맡았던 2016년에는 “2020년까지 매출 2조5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표는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디지털 팩토리 등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성장성 있는 사업영역을 대표 사업으로 만들고 클라우드 인프라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글로벌 확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