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안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에 수출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규제를 대폭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성능이 낮은 AI 칩까지도 중국 수출 길이 막힐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생성형 AI 두뇌 역할을 하는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는 중국 빅테크 기업들에 AI칩을 공급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 의존도는 20%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2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미 상무부가 이르면 다음달 초부터 엔비디아와 AMD를 비롯한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가 만든 AI 칩을 중국과 우려 국가에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개발해 군 무기 등에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 통제 규제를 시행하고, 엔비디아의 첨단 AI칩 A100·H100의 중국 판매를 금지했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성능이 낮은 AI 반도체도 중국 시장에 공급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앞서 대중(對中) 판매를 금지한 엔비디아의 H100은 생성형 AI 열풍을 일으킨 챗GPT 개발에 사용된 GPU 반도체다. 이 제품의 중국 수출이 막히자, 엔비디아는 데이터 처리 속도가 10~30% 낮은 A800과 H800 칩을 개발해 중국 기업에 공급해 왔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 그룹과 중국 최대 검색엔진 업체 바이두, 중국 최대 게임업체 텐센트 같은 IT 공룡들은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에 엔비디아의 H800 칩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렇게 성능을 낮춘 반도체도 미 정부의 별도 허가를 받지 않으면 중국 기업에 팔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 상무부는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으로부터 AI 칩을 공급받아 온 중국 AI 기업들에 클라우드 서비스 대여를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미국의 핵심 AI 기술을 획득해 화학 무기 개발과 해킹 등에 악용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그간 미국에서는 대중 첨단 AI 반도체 수출 규제의 실제 영향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엔비디아가 중국 기업에 팔고 있는 A800과 H800은 첨단 제품에 비해 속도는 낮고 가격은 2배쯤 비싸지만, 여전히 중국 기업에는 첨단 반도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텐센트는 지난 4월 H800 칩을 사용해 대규모 AI 시스템을 학습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1일에서 4일로 단축될 것으로 추산했다.
강화된 규제로 직격탄을 맞을 엔비디아를 비롯한 업계의 반발은 거세질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대중 반도체 규제에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황 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부품 공급뿐 아니라 최종 소비 시장으로서도 대체 불가능하다”며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반도체를 살 수 없다면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 반도체 업계가 대중 수출 규제 완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언제 시작될지는 불확실하다고 WSJ은 전했다. 다만 내달 초 중국 방문이 예정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 일정 이후 새 규제가 시작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3.01%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