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21일(현지 시각) 온라인으로 진행된 투자자 웹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인텔 홈페이지 캡처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부문을 사실상 독립적인 사업부로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경쟁하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세계 최대의 중앙처리장치(CPU) 기업인 인텔은 그동안 파운드리 사업부를 제조그룹이라는 틀 안에서 설계, 개발 조직에 종속된 형태로 운영해왔지만, 앞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부여하고 투자 비용 효율화에도 나선다.

특히 인텔은 앞으로 파운드리 사업부의 수주 상황과 매출, 이익도 별도로 집계해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IFS)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같은 회사인 설계 사업부로부터 받는 수주 물량만으로도 삼성전자를 제치고 TSMC에 이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텔은 현재 세계 CPU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으며, 특히 고부가가치 영역인 서버용 CPU의 경우 9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설계 중심 헤게모니, ‘제조’로 무게중심 이동

데이브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 21일(현지 시각) 온라인으로 진행된 투자자 웹세미나에서 “인텔은 반도체 제조그룹에 속해있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더욱 독립적 형태로 운영하게 될 것”이라며 “파운드리 사업부는 기존과는 달리 시장 표준 가격에 기반해 설계 사업부로부터 물량을 수주해 재대로된 매출과 이익을 책정하게 되며 직접 손익을 관리하는 조직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해 자체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 격상되는 것이다.

진스너 CFO는 “이번 결정은 인텔이 ‘IDM 2.0′으로의 방향성을 명확히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IDM(종합반도체기업)은 설계, 제조, 후공정, 마케팅을 모두 직접 수행하는 거대 기업이다. 전통적으로 IDM은 전반적인 반도체 비즈니스를 최적화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TSMC와 같은 위탁 생산 전문 기업과 AMD, 퀄컴 등 팹리스(설계 전문기업)이 주도하는 ‘분업화’ 모델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며 IDM을 기술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했다.

앞서 삼성전자(005930) 역시 이같은 IDM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반도체 부문을 메모리 사업부, 시스템LSI 사업부, 파운드리 사업부로 분할해 운영했다. 각자의 영역을 전문화하고 독립성을 부여해 자생력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다. 특히 지난 2017년부터 파운드리 사업부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등 거대 고객사들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는 인텔 자체 칩 생산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외부 고객사 유치에도 힘을 쏟을 전망이다. 진스너 CFO는 “인텔은 전통적인 비즈니스 방식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파운드리 사업부도 (TSMC, 삼성전자와 같은) 다른 파운드리 업체와 경쟁을 해야하지만, 반대로 인텔 이외의 고객사를 유치할 수도 있으며 실제 연내에 외부 기업을 고객사로 유치할 계획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이슨 그레브 부사장은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부가 인텔 내부 물량을 수주할 때도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시장 가격에 근거해서 책정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더 투명성 있는 비용 집행이 이뤄지며 칩을 설계해 테스트하는 비용 역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파운드리 모델은 인텔의 이익률을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고 전 세계의 다양한 반도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야망 실현을 위한 IDM 2.0 전략의 핵심이다”라며 “이 파운드리 모델은 2023년에 3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2025년까지 80억~100억 달러의 비용 절감 목표 달성을 위해 인텔이 다년간 추진할 비용 효율화 노력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오레곤에 위치한 인텔 공장 내부. /인텔 제공

그동안 설계자 조직 중심으로 돌아가던 인텔 내부의 권력 구도가 제조 분야로 분산된다는 의미도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텔의 이번 발표는 전통적으로 설계조직 중심으로만 짜여져 있는 내부 헤게모니를 바꿔 제조분야, 특히 파운드리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이는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는 의미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파운드리에 돈 쏟아붓는 인텔, 숙적 ARM과도 동맹

실제 인텔은 파운드리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인텔은 250억달러를 들여 이스라엘 남부 키르얏 갓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16일에도 46억달러(약 6조원)를 들여 폴란드 브로츠와프 지역에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같은 후공정 라인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독일 마그데부르크(170억유로), 아일랜드 레이슬립(120억유로)에도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겔싱어 CEO는 최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산업(반도체 산업)을 아시아에 빼앗겼다”며 “이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경쟁력을 더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칩 제조 분야에서 삼성전자, TSMC 등 아시아 대표 반도체 업체에 뺏긴 왕좌 자리를 되찾고자 유럽 중심의 공격적인 투자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위한 전략적 제휴에도 적극적이다. 앞서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부인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는 영국 설계자산(IP) 기업인 ARM과 파운드리 동맹을 맺기도 했다. 서버, PC CPU 설계 시장의 지배자인 인텔이 모바일 분야 설계자산(IP)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ARM과 손을 잡은 것이다. 지난 4월 인텔은 ARM과 함께 인텔의 18A(옹스트롬) 공정을 활용한 모바일용 SoC(시스템온칩)를 생산한다고 밝혔다. 인텔의 18A 공정은 1.8나노(㎚)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