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업계가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개발해온 가운데 독자들의 반발이 거세 고민에 빠졌다. AI를 활용해 웹툰을 만들면 누군가의 저작권을 침해해 돈을 버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은 곧 진행할 웹툰 공모전에서 AI 활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기로 했다. AI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네이버웹툰 신작인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은 독자들의 ‘별점 테러’로 평점이 2.82대에 머물러있다. 보통 인기 최하위권 웹툰들도 평점이 5~8점 사이인데 평점 2점대가 나온 것은 초유의 상황이다. 해당 작품은 AI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면서 평점이 추락했다.
예컨대 주인공이 창문에 기대 있는 장면에서 옆에 상자가 있었는데, 그 다음 컷에서는 상자 대신 와인통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배경으로 쓰인 집들의 크기가 뒤죽박죽이었다는 점, 화풍이 컷마다 조금씩 변하고 손가락 등 신체 일부 묘사가 어색하다는 점도 AI로 제작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웹툰 제작사인 블루라인 스튜디오는 1화 말미에 콘티, 선화, 배경작업 과정 그림을 공개하며 해명글을 덧붙였다. 블루라인 스튜디오는 “AI를 이용해 생성된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3D 모델과 각종 소재들을 사용하면서 위화감을 줄여보고자 작업 마지막 단계에서 AI를 이용한 보정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올라온 1~6화를 AI 보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재업로드했다”며 “앞으로도 AI 보정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앞으로 블루라인 스튜디오 소속 작가들 작품은 다 거르겠다’, ‘앞으로 양산형 AI 웹툰이 판치게 되는 것 아니냐’ ‘인건비 줄이고 돈만 벌려고 하는 것이냐’ ‘저작권을 중요시하게 여겼던 네이버웹툰이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AI를 활용해 그림을 그리면 저작권이 가장 문제다. AI를 얼마만큼 학습시켰는지도 모르고 원작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AI를 이용해 웹툰을 제작하고 수익을 낸다는 것은 다른 창작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보정, 색감, 질감, 묘사 등 어느 누군가가 수년간 노력해서 만든 제작물을 베껴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독자들의 반발에 웹툰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창작자들의 작업 환경을 돕기 위해 작품 활동에 AI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홍보했기 때문이다. 특히 네이버웹툰은 ‘웹툰 AI’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AI가 채색을 도와주는 ‘웹툰 AI페인터(Webtoon AI Painter)’도 서비스한다. 창작자가 색을 선택하고 원하는 곳에 터치하면 AI가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 자동으로 색을 입혀주는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넣으면 웹툰 화풍으로 바꿔주는 ‘웹툰미’도 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밑그림 수준의 스케치를 정교한 선화로 바꿔주거나 텍스트를 그림 콘티로 바꿔주는 기술 등도 이미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논란에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은 공모전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지 못하게 했다. 카카오웹툰 공모전 이름은 ‘인간이 웹툰을 지배함’인데 “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그린 작품만 받는다”고 명시했다. 네이버웹툰은 진행 중인 ‘지상최대공모전’ 2차 접수 단계에서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하면 안된다고 1차 합격자들에게 공지했다. 지난달 23~25일까지 진행된 공모전 1차 접수 단계에서는 AI 활용 관련 안내사항을 공지하지 않았는데 2차 접수 단계에서 공모전 규정을 급히 변경한 것이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텍스트, 이미지, 음악 등의 콘텐츠가 AI를 이용해 만들어졌다면 이 같은 내용을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의원은 “EU에서는 AI가 만든 콘텐츠에 표기를 의무화하는 규제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AI로 만든 정치 광고영상과 사진에 출처를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AI 오·남용을 막기 위한 관리 방안을 마련해 규범적 틀을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는 AI를 활용하더라도 저작권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4월 10주년 간담회에서 “AI 학습 모델을 만들더라도 저작권에 문제가 없는 자체 학습 데이터를 이용하겠다”며 “크리에이터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