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액티비전(블리자드)은 '성추행 스캔들'로 몸살을 앓아왔다. 블리자드 직원들은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사내 만연한 성폭력 및 성차별 문제를 방치했다는 혐의로 회사를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일부 블리자드 남직원들은 출장지에서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한 여직원의 나체 사진을 돌려봤다. 피해 직원의 신고에 회사는 침묵했으며 가해자는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이에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블리자드가 사내 성범죄 등 위법 행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3500만달러(약 464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블리자드는 내달 콘솔·PC 신작 '디아블로4′를 선보인다. 11년 만에 내놓는 후속작이지만, 사내 성범죄 방임·은폐 논란 등 회사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아블로4는 게임 전체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까지 교체되는 등 진통을 겪었는데, 게임의 완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 디아블로4 게임 디렉터까지 교체하며 혼란
3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디아블로4 출시를 앞두고, 성추행 논란 속에 블리자드가 신작 개발 도중 디아블로4 게임 디렉터를 한 차례 교체하는 등 내홍을 겪은 사실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게임 디렉터란 게임 구상, 기획, 개발 등 신작이 출시될 때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업계에선 게임 디렉터가 신작 개발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해당 게임의 수장과도 같은 존재라고 설명한다.
2021년 4월 디아블로4 신작 개발을 총괄하는 게임 디렉터 루이스 바리가(Luis Barriga)는 회사가 성추행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회사를 떠났다. 명확한 퇴사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 포브스는 "블리자드가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지목됐거나 이러한 행위가 고발됐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직원들을 회사로부터 분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블리자드는 바리가 디렉터가 떠난 후 남은 공석에 2005년부터 블리자드에서 근무한 조 셜리(Joe Shely)를 앉혔다고 그해 10월 발표했다. 그는 성추문 논란을 의식한 듯 2021년 10월 블리자드 블로그에 "당신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우리 팀 역시 최근 사건들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라며 "마지막으로 글을 쓴 이후 많은 일이 있었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썼다. 이어 "그러한 노력과 함께, 디아블로4 개발 역시 계속돼야 한다"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 디렉터가 변경된다는 것은 마치 한 회사의 사장이 바뀌면 회사의 비전이 바뀌듯이, 게임의 방향성이 전반적으로 변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디아블로4가 개발 과정 중 많은 불협화음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 CEO 살해 협박 전력에 직원들 사퇴 요구
블리자드 내 성범죄 및 윤리 문제는 만성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돼 왔다. 외신은 블리자드 조직문화를 '프랫보이(방탕한 남자 대학생)' 문화라고 지칭하며, 여직원에 대한 성범죄가 만연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많은 블리자드 직원들은 회사가 과도한 음주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라며 이러한 파티 문화에서 많은 성범죄가 자행됐고,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문화에서 고통받았다"고 보도했다.
회사는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까지 있다. 바비 코틱(Bobby Kotick) 블리자드 CEO가 직원을 성추행하고 살해 협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6년 코틱 CEO의 여성 조수 중 한 명이 코틱이 자신을 성추행했으며 살해 협박하는 메시지를 음성사서함에 남겼다고 이야기했다"라며 "이에 대해 블리자드 측은 '코틱 CEO는 과장된, 부적절한 내용이 담겼던 음성메시지에 대해 16년 전 사과했다. 아직까지도 그는 당시 음성메시지를 과도하게 과장된 어조로 남긴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답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 블리자드 직원 1000여명이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까지 냈으나, 그는 여전히 CEO직을 지키고 있다.
업계에선 이러한 혼란 속에 탄생한 신작이 완성도를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작 개발을 담당하는 게임 디렉터가 교체되는 사례는 많지 않으며, 실제 교체되고도 신작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라며 "예컨대 공포 공상과학(SF) 게임 '데드 스페이스'도 스타 게임 디렉터였던 글렌 스코필드가 회사를 떠나고 디렉터가 교체되면서 이후 후속작이 실패했다"라고 했다.
코틱 CEO 역시 언제 회사를 떠날지가 미지수다. 코틱 CEO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블리자드 인수합병에 성공할 경우 CEO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2월 영국의 반독점 규제 당국인 경쟁시장청이 인수에 제동을 거는 등 인수합병 과정이 늘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