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오픈AI가 선보인 ‘챗GPT’가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AI 툴(도구)이 쏟아지고 빅테크 기업들도 일제히 경쟁 서비스·제품 출시에 나서고 있다. 조선비즈는 챗GPT의 본고장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AI 골드러시’의 주인공들과 함께 생생한 혁명의 무대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안익진 몰로코 대표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 몰로코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했다./레드우드시티=이소연 기자

지난 3월 24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레드우드시티 마셜스트리트. 하얀색 건물 5층 몰로코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노란색 포스트잇에 인공지능(AI) 학습에 필요한 각종 ‘인풋(명령어)’을 적어 화이트보드에 붙이고 있었다. 몰로코는 이용자가 쓰는 앱 종류, 사용시간, 사용위치, 사용기기 등의 정보를 AI 기술로 수집·분석해 고객사의 맞춤형 광고 집행을 돕는 회사다. 스냅, 도어대시, GS리테일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2013년에 설립된 몰로코는 2021년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 8년 만에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 됐다.

“‘챗GPT’를 계기로 실리콘밸리의 분위기가 360도 바뀌었다. 머신러닝(ML)이라는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은 투자자들에게 힘들게 설명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젠 ‘광고업계의 챗GPT라고 보면 된다’는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 AI가 일부 전문가들만 아는 영역에서 이젠 모두의 핫이슈가 됐다. 실리콘밸리의 모든 자본과 인재들이 이 곳으로 몰리고 있다.”

안익진 몰로코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거쳐 미 펜실베이니아대 전자공학 석사, UC샌디에이고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구글에서 근무했다. 그는 유튜브가 ML을 활용해 이용자에게 특화된 광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날 몰로코 사무실에서 만난 안 대표는 챗GPT가 실리콘밸리에서 전례 없는 ‘AI 스타트업 붐’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몰로코의 한 직원이 PC 모니터로 자사 솔루션의 효과를 점검하고 있다./ 레드우드시티=이소연 기자

◇ AI 골드러시에 한인 스타트업도 황금기… 올해 분위기 완전 달라져

한인 AI 스타트업들도 실리콘밸리발(發) AI 골드러시 최전선에 서 있다. 대표주자인 몰로코는 AI 광고 솔루션을 문의하는 고객이 늘자 지난 2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대상으로 하는 수익화 솔루션을 출시했다. OTT 이용자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고객사가 이용자에게 ‘가장 구매할 확률이 높은 제품의 광고’를 노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몰로코는 올해 자사 AI 서비스로 고객사들의 광고가 누적 기준 760억회, 60억대 기기를 통해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성과를 거뒀다.

안 대표는 올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 2023)에서 AI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GDC에서 인게임 마케팅에 ML을 활용한다고 하면 ‘다소 생소하다’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올해는 AI가 가장 키워드로 떠오른 만큼 이해도와 호응이 높았다”라고 했다. ML이란 AI의 하위집합으로,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데이터 내에서 패턴을 찾거나 이를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안 대표는 “2013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땐 아직 AI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알파고가 인기를 끌었던 2016년엔 ‘광고 최적화 알파고’라고 회사를 소개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다”면서 “(당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AI가 정말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겠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AI 스타트업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재 유치’라고 답했다. 스탠퍼드대, UC버클리 등 명문대에서 ML 등을 전공한 AI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AI 스타트업의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생성형 AI 열풍이 닥치기 3년 전부터 이미 챗GPT의 근간이 되는 언어모델인 ‘트랜스포머 모델’ 관련 AI 인력을 채용해 연구를 진행했다”면서 “이러한 연구가 가능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선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 몰로코·스윗·센드버드 기대주… ”비싼 챗GPT 싸게 만드는 것이 숙제”

마이크로소프트(MS)가 100억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한 오픈AI처럼 대규모 자본·인력을 앞세운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한인 스타트업들이 도태되지 않고 계속 설 자리가 있을까. 안 대표는 AI를 활용해 특정 분야를 미리 선점하는 기업은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했다.

안 대표는 “안드로이드나 iOS에서 구동하는 모바일 앱 회사인 메타나 텐센트는 구글이나 애플이 아니라면 서비스를 작동시키지 못하지만, 사회에 주는 영향력이나 규모는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AI 생태계가 지금처럼 확장한다면 한인 AI 스타트업들도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서울 종로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활동하다 2018년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창업한 AI 기반 업무협업 툴 개발 스타트업 ‘스윗’이나 엔씨소프트 개발자 출신 김동신 대표가 미국으로 건너가 2015년 설립한 AI 기반 B2B 채팅 및 통화 소프트웨어 서비스 개발사 센드버드가 대표적인 기대주다.

안 대표는 몰로코 역시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몰로코는 오픈AI로부터 AI 서비스 개발을 위한 원재료를 구매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언어모델을 활용해 AI 광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 대표는 “오픈AI와 몰로코에 동시 투자한 업계 관계자가 몰로코 역시 오픈AI처럼 자신만의 AI 모델로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라고 했다.

안 대표는 현 시점에서 독자적인 기술과 인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성형 AI는 현재 기술은 실존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초기 단계다. 챗GPT는 아직 너무 비싸다”면서 “그렇기에 챗GPT 가격을 싸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신경망 처리장치(NPU)를 제조하는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라이트형제가 하늘에 뜨는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이를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상품으로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생성형 GPT를 싸게 만드는 것이 오픈AI 등 업계가 풀어야할 숙제다”라고 했다.

그는 몰로코가 어디에나 적용가능한 보편적인 AI 모델을 만들기보다는 광고라는 특정 분야에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AI 모델을 개발 중이기에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광고주만을 위한 특화된 챗GPT를 개발하는 것이기에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아무리 AI 서비스 가격이 비싸져도 비용 대비 퍼포먼스(결과)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 기업은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몰로코 역시 가능하다고 자신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