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훈 아마존웹서비스(AWS) 금융고객팀 총괄이 26일 서울 강남구 AWS코리아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박수현 기자
“클라우드 컴퓨팅 가격 체계는 대부분 종량제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자원은 덜어내는 식으로 비용을 효율화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금융 업계는 보수적이라고 할 만큼 한 번 구축해놓은 인프라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KB금융그룹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인프라 자원은 최대 용량으로 유지하되, 업무 외 시간에는 개발 환경 장비를 끄는 식으로 현재 많은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김주현 KB금융그룹 클라우드 센터장
“주말에 개발 환경 장비를 끈다는 건 온프레미스로 실현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은행에서는 과거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게임처럼 기술 수준이 굉장히 높은 산업에서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KB금융그룹의 사례는 국내 금융 기업들의 IT·클라우드 역량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으로 여겨진다.”
노경훈 아마존웹서비스(AWS) 금융고객팀 총괄

국내 금융 기업들이 클라우드 도입에 있어 더 이상 ‘왜(Why)’가 아닌 ‘얼마나 빨리(How fast)’를 묻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관련 규제가 완화된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대유행)을 계기로 전 산업군에 퍼진 ‘속도전’ 기조에 힘입어 금융권의 클라우드 도입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경훈 아마존웹서비스(AWS) 금융고객팀 총괄은 26일 서울 강남구 AWS코리아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미 다른 산업군에서 클라우드 사용에 대한 검증이 끝난 만큼, 금융사들은 이제 클라우드를 사용할지 말지 보다는 클라우드를 어떻게 하면 빨리 도입해 잘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금융사도 클라우드를 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2019년 마련됐고, 이후 팬데믹 기간 비대면 금융의 폭발적인 수요를 경험하면서 핀테크 스타트업은 물론 전통 기업 사이에서도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됐다”며 “여기에 정부가 마이데이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클라우드의 중요성은 더욱 대두됐다”고 했다.

노 총괄은 대내외 불확실성도 국내 금융 클라우드 성장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각계각층에서 저마다 미래 경제 변화에 대한 예측을 내놓고 있지만 가장 확실한 건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라며 “이에 기업들은 구체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클라우드 전략을 세우는 대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노 총괄은 “기업 입장에서는 높아진 고객의 기대치도 숙제다”라며 “시장에 새로 진입한 경쟁자들이 앞다퉈 신규 서비스를 내면서 고객들의 눈높이를 높인 것이다. 이런 확장성에 더해 최근에는 IT 인프라의 운영 탄력성, 즉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는 고객도 늘고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2023년 디지털금융 감독방향’ 중 일부 발췌. /아마존웹서비스(AWS)

실제 금융감독원의 ‘2023년 디지털금융 감독방향’에 따르면 2016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약 6년간 금융권의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건수는 34건에서 666건으로 1959% 증가했다. 노 총괄은 “천지개벽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증권업계에서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트래픽이 갑자기 늘어나는 대형 기업공개(IPO) 등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건 온프레미스가 아닌 클라우드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한때 ‘하루 최대 64만개 주식계좌 개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토스증권이 한 예다. 노 총괄은 “토스증권은 방향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동시다발적으로 실험을 하고, 성과가 안 나는 건 빨리 접는 식으로 사업을 전개했다”며 “이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클라우드로의 대응이 필수적이다. 토스증권은 클라우드 도입 후 같은 가격, 같은 조건 대비 온프레미스보다 30% 이상 성능이 향상됐다고 밝혀왔다”고 전했다.

소수지만 클라우드 도입을 이미 마치고 비용 효율화를 고민하는 곳도 있다. KB금융그룹이 그중 하나다.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클라우드를 도입한 KB금융그룹은 올해 사업별로 비용과 아키텍처, 페인 포인트(고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를 분석해 보다 효과적인 비용 절감 방안을 도출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김주현 KB금융그룹 클라우드 센터장은 “클라우드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두 가지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하나는 비용, 하나는 인력 확보였다”며 “통상 예산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클라우드는 사용한 만큼 과금이 되기 때문에 예산을 초과할 경우 이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이어 “인공지능(AI), 머신러닝(ML) 등 기술력을 가진 인재를 확보하는 데에도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라며 “관련 풀이 적은 데다, 금융이라고 하면 IT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개발자가 많아 외부 영입이 쉽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우선순위로 놓고 클라우드 전략 방향을 다시 짜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