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PFAS) 규제 강화에 나선 가운데 인텔, 엔비디아, IBM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아직 대응에 나서지 않으며 대책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내 30개 이상의 주정부에서 PFAS를 규제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텔, 엔비디아, IBM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로비 연합을 결성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관련 규제가 반도체 산업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발암성 오염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 6가지에 대한 수돗물 기준치를 제정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EPA는 PFAS의 일종인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의 수돗물 함유 허용량을 현재 측정법의 검출 한계치인 4ppt(parts per trillion)로 제한하는 등의 규제안을 내놨다. 올 연말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PFAS는 불소를 포함하고 있는 수천 가지 화합물을 말한다. 내열성과 방수성 때문에 1940년대부터 포장재, 자동차, 배터리, 의료 장비,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 ‘불멸의 물질’로 불린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핵심 공정 중 하나로 꼽히는 에칭(Etching) 과정에서 냉각제로 사용된다. 웨이퍼 표면의 미세한 크랙을 화학작용을 이용해 제거하는 공정이다.
PFAS가 환경오염과 인체에 유해하다는 논란이 일자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PFAS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PFAS 규제법안 초안을 만든 후 미국 주정부들도 규제에 동참하는 추세다. 캘리포니아주와 메인주는 각각 2022년, 2021년에 규제안을 통과시켰으며 미네소타의 경우 2025년부터 가장 강력한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IBM, 엔비디아 등 반도체 로비 연합은 미네소타주의 규제가 과하다며 반대 서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해당 법안의 조치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전자 제품을 포함한 수천 개의 제품을 금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업체들은 앞서 통과된 캘리포니아와 메인의 규제안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오스틴,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보유한 삼성전자에도 이번 이슈는 잠재적 리스크 중 하나다. 삼성전자의 공장들이 위치한 텍사스주의 경우 아직 PFAS와 관련한 직접적인 규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EPA가 사안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경우 중장기적인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관련 사안에 대한 공식입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환경적 위험요소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현재는 미국 반도체 기업으로만 구성된 로비 연합에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와 미국 등지에서 PFAS 규제 강화가 이뤄지면서 에칭 공정에 사용되는 냉각제 수급과 관련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의 PFAS 규제 초안에 따르면 화학업계는 PFAS 대체 물질을 개발할 때까지 18개월에서 12년의 법 적용 유예기간을 적용받을 수 있다. 법안의 사회·경제 영향 평가와 EU 집행위원회 및 회원국들의 최종안 승인 여부 등을 고려하면 2026년쯤부터는 관련 소재 생산이 중단되는 것이다.
반도체 냉매인 쿨런트 시장에서 점유율 1위인 글로벌 화학기업 3M은 이미 지난해 12월쯤 2025년 말까지 PFAS 제조를 종료할 것을 선언한 바 있다. 3M은 작년 3~4월에도 벨기에 정부가 PFAS 배출 관련 환경기준을 강화하자 생산을 멈췄다가 재개한 바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장 타격은 없을 전망이다. 그간 반도체 공급망 불안 이슈가 불거지면서 중국 등 유럽 외 지역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미 공급처를 각국에 확보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유럽 규제가 시행돼도 생산에 차질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