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 팹에서 연구원들이 작업하고 있는 모습./TSMC 제공

승승장구하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도 경기 침체에 따른 반도체 주문 감소로 팹(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 올 1월까지 TSMC는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냈으나, 지난달 매출은 작년 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업황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파운드리 시장 선두주자 역시 전방 산업 수요 위축 여파로 주문 감소와 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 TSMC 주요 고객사들 1분기 주문 일제히 줄여

14일 TSMC 집계에 따르면 TSMC의 지난 2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11.1% 감소한 1631억7000만대만달러(약 6조95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1월과 비교하면 18.4% 감소한 수치다. 올 1월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16.2%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시장은 1월 실적이 지연된 주문 이행에 따른 반짝 효과로 추정한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큰손 고객들의 재고 조정에 따른 주문 감소 영향이 지배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TSMC의 주요 고객사인 AMD, 엔비디아, 미디어텍, 퀄컴, 인텔은 일제히 올 1분기 주문을 줄이고 나섰다. 이미 쌓인 반도체 재고를 소진하는 데 집중하면서 주문을 올 하반기로 이연시키거나 주문량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오픈AI의 챗GPT 관련 긴급 수요 덕에 TSMC가 당초 예상과 달리 상반기에 호실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으나, AI 프로세서 관련 유의미한 수요는 올 2분기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칩 수요가 높은 중국 업체들의 재고 조정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AMD, 미디어텍 등 대다수 칩 공급사의 재고가 쌓이고 있고, 그 영향으로 파운드리도 근래 가장 암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AMD와 엔비디아의 새로운 AI 프로세서 주문은 2분기에 본격화해 줄어든 주문량을 일부 상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연말부터 하락세 보인 가동률 ‘뚝’

주문이 급감하면서 TSMC의 공장 가동률은 최첨단 공정인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를 제외하고 전부 하락 추세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작년 이례적으로 가동률 100%를 찍은 공정이 연말부터 하락세를 보이며 올 1분기까지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평균 가동률은 60~70%까지 내려왔고, 6·7㎚ 라인 가동률도 올해 초 50%까지 떨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만 IT매체 디지타임스도 지난 9일 “TSMC의 6·7㎚ 공정 가동률이 올 1분기에 더 떨어져 이달 말에는 4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애플이 주요 고객인 3㎚ 공정은 이번달 생산량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봤다.

그래픽=편집부

◇ 삼성전자 “파운드리 1분기 성장률 둔화 전망”

파운드리 업계의 불황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2위 업체인 삼성전자 등도 1분기 실적이 악화할 전망이다. TSMC는 올 1분기(1~3월) 매출이 전분기 대비 14%가량 감소한 167억~175억달러(약 21조6600억~22조700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세계 경제 둔화에 따른 주요 고객사의 수요 감소로 1분기 매출 감소가 예상되며 연간 설비투자를 소폭 삭감할 계획이다”면서 “다만 올 하반기부터는 AI 관련 신제품 출시로 반등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경쟁력이 TSMC에 비해 낮은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올해 적자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업황 침체기를 체질 전환의 기회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파운드리 시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대규모 봉쇄 시작 및 미국의 금리 인상 가속화를 기점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기대보다 느린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올 1분기는 수요 약세로 성장률 둔화가 전망되나 하반기부터는 수요 진작과 공급망 정상화에 따른 점진적 시장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첨단 공정에서는 3㎚ 2세대 제품 적기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4㎚ 2·3세대의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해 올 상반기 양산을 준비 중”이라며 “전체적인 사업 구조에서 모바일 이외 고객 다변화를 추진해 시황에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로 보강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