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확률에 따라 종류·효과·성능이 결정되는 아이템으로 게임업계의 주요 수익모델이었다. 조선비즈는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정보 공개 의무화가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데드사이드클럽의 대표 아트 이미지./데브시스터즈 제공

데브시스터즈의 대표 게임인 '쿠키런: 오븐브레이크'는 지난 2021년 확률형 아이템으로 과도한 과금을 유도한다며 이용자가 트럭 시위에 나서는 등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게임 업데이트 과정에서 게임 상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는 '수호카드'라는 확률형 아이템을 추가했는데, 유료 아이템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정체성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약 1년 반 만에 회사가 선보인 게임 '데드사이드클럽'은 과금 여부가 게임 내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게임 내 플레이에 따라 보상을 지급받는 '시즌패스'와 다수의 아이템을 한 번에 제공하는 '시즌번들'로 게임이 구성돼 이용자의 불만을 상당히 반영했다는 평가다.

내년부터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공개가 의무화된다. 그간 자율적으로 확률 정보를 공개했던 게임업체들은 내년 상반기부터 이용자에게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던 우리 게임업계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BM)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국내 게임산업을 위축시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게임산업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1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시행령 제정을 거쳐 내년 시행된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의 캐릭터나 무기 등을 정가에 유상으로 판매하는 대신 무작위 뽑기로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게임 아이템을 의미한다. 랜덤박스 혹은 가챠라고도 불린다.

게임사들은 2015년부터 한국게임산업협회 주도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공개해왔으나 법적 규제 없이 게임사 자율에 맡겨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됐다.

개정안은 게임물을 제작, 배급 또는 제공하는 자에게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표시할 의무를 부여한다. 표시할 지점(게임물·홈페이지·광고·선전물)과 표시할 사항(종류·종류별 공급 확률정보 등)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게임업체가 이를 어기면 정부가 시정을 명령할 수 있고,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한국 게임은 소수의 고과금 이용자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에 기대 새로운 BM 개발에 소홀했다"라며 "개정안을 계기로 확률형 아이템이 아니라 장식용 아이템(과금이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아이템)을 기반으로 하는 BM 등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업체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처럼 개정안이 게임산업을 자정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조재윤 니트로스튜디오 디렉터가 카트라이더를 계승한 신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에서 지킬 3NO 원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유튜브 캡쳐

◇ 확률형 아이템, 안정적 '캐시카우' 역할… 이용자층 넓어져 정보 공개 타격 없어

국내에서 온라인 게임이 태동했던 1990년대 후반,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대부분의 게임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월 정액제는 다수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의 BM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용자의 거부감이 컸다. 이에 게임을 무료로 하되 일부 콘텐츠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부분유료화를 게임사들이 적용하기 시작했다.

넥슨은 2004년 일본에 메이플스토리를 선보이면서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보다 넓은 이용자를 확보해 무료로 게임을 제공하되 확률형 아이템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은 게임사에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보장했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높은 수익을 거둔 대표적인 게임인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월정액제 플레이로 처음 시작했으나 2019년 월정액제를 폐지하기도 했다.

게임사들은 게임 확률을 공개하면 매출이 감소하는 등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매우 낮은 확률을 이용자가 인지하게 돼도 얻게 되는 보상이 크다면 이용자는 확률을 고려하지 않고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억 단위의 높은 상금을 얻기 위해 이용자가 복권을 구매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이 낮은 확률을 나타내도 가치 있는 보상을 얻기 위해 이용자가 구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창석 경희대 문화관광콘텐츠학과 교수는 "확률이 기본적으로 이용자의 인식을 왜곡하는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 정보가 공개돼도 게임사 매출이 감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출이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라며 "이번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한국 게임사가 BM 관련 R&D를 더 진행하는 혁신 동력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은진 명지전문대 소프트웨어콘텐츠과 교수는 "과거보다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층이 넓어진 상태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공개한다 해도 게임산업의 매출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게임사가 더 고민해 다양한 게임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 게임 개발자 사기 저하 우려… 해외 게임사와 역차별 논란

일각에선 개정안이 게임 개발자의 사기를 저하하는 악법이 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확률형 아이템의 기준이 여전히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단순한 아이템 드랍률(몬스터 처치 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확률) 등 게임 내 재미를 좌우하는 모든 요소가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중소 인디게임 개발사 등은 관련 프로그래밍을 새롭게 구현하기 위해 전담인력을 배치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라며 "확률형 아이템을 완전히 배제한 게임을 만들려면 탄탄한 세계관 등을 잘 구현해야 하는데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개발사가 게임 개발을 포기할 수도 있다"라고 했다.

구독 BM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OTT업계 등과 달리 게임업계에선 아직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되 아이템 구매 등으로 수익을 거두는 것이 더 보편적이다. 개정안이 국내 업체만을 규제한다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법(개정안)이 국내 기업에만 영향을 미치다 보니 해외 게임사는 법망에서 벗어나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계속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며 "지금 당장 발생하는 피해를 방치할 수 없다보니 법을 통과시켰으나 업계의 목소리가 충분히 담기지 않았고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수익의 원천이 바뀌면서 게임산업이 정체될 수 있다"라며 "게임이 수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인 만큼 정부가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진흥 정책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