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에 피의자로 입건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방통위 공식 업무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아직 검찰의 정식 조사를 받기 전이지만, 방통위 업무보다는 조만간 다가올 소환 조사 준비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원장의 거취가 불분명해진 상태에서 방통위는 올해 추진해야 할 주요 업무들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27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한상혁 위원장은 지난 15일 전체회의를 끝으로 현재까지 10여일이 지나도록 공식 업무 일정에서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주 ▲방송분쟁조정위원회(21일) ▲법사위 법안소위(22일) ▲인도네시아 민영TV협회 면담(23일) ▲지역방송발전위원회 회의(24일)는 모두 안형환 방통위 부위원장이 방통위를 대표해 참석했다. 그나마 한 위원장이 이번 주 소화하는 공개 일정은 다음달 2일로 예정된 KBS 창립 50주년 기념식 행사 참석이 유일하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위원장이 아직 피의자로 조사를 받거나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인 출근을 하고 있으며, 업무도 평소하고 다름없이 하고 있다”면서 “위원장 일정이 없는 것은 회의할 안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6일 한 위원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한 위원장은 검찰로부터 지난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의 TV조선 재승인 심사 당시 일부 심사위원들과 공모해 고의로 감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TV조선의 최종 평가점수가 재승인 기준을 넘기자 심사위원장에게 TV조선의 최종 평가점수를 몰래 알려주고 점수를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혐의로 이미 방통위 방송정책국장과 과장,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장이 구속된 상황이다. 현재 검찰이 한 위원장의 스마트폰을 포렌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조만간 소환조사를 마치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의 입건으로 방통위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주요 업무도 마비된 상황이다. 방통위가 이달 초 발표했던 2023년 업무 추진계획 중 제대로 시작한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업무 자체가 자잘한 일상 업무를 제외하고 하나도 없다”면서 “특히 올해 10월 입법 목표인 통합미디어법을 위해선 지금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관련 업체들과 사업자 협의체부터 꾸려야 하는데 누구 하나 엄두도 못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통합미디어법이란 TV와 라디오 방송 등 기존 미디어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비롯한 뉴미디어를 모두 포함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현행 미디어 규제 체계는 방송법·IPTV법·전기통신사업법 등 네트워크별로 분산돼 있는데, 최근 OTT 등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법적 사각지대가 발생해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방통위의 업무 공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 위원장 대신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안 부위원장도 다음달 임기가 만료된다. 하지만 당분간 부위원장도 공석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방통위 상임위원은 대통령과 국회 여야 추천으로 구성되는데 안 부위원장 선임 당시와 달리 여야가 바뀌면서 부위원장 자리를 어디서 추천해야 하는지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