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를 렌탈한다면 판매 중인 제품만 500개가 넘고, 렌탈 조건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무엇보다 제품을 렌탈하기 위해서는 영업 사원과 만나거나 전화 상담을 꼭 해야 한다. 렌트리는 이런 번거롭고 불편한 아날로그식 유통 구조를 개선해 소비자 편익을 개선하고자 한다.”

가전 렌탈은 생활가전 제조사들이 집중하는 시장이다. 소비자의 소득 수준과 내수경기에 영향을 받는 일시불 판매와 달리 경기가 좋지 않아도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소비자 이탈을 막는 락인(lock-in·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것) 효과, 한 번에 여러 대를 묶어 파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렌탈은 매력적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초기 비용 부담으로 고가의 가전을 사용할 수 있고 사용기간 내내 전문가 관리도 받을 수 있다. 정수기, 비데로 한정된 렌탈 품목이 최근 들어 공기청정기, 건조기, 무선청소기, 안마의자, 식물재배기 등으로 확대되면서 렌탈 시장의 성장세는 더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렌탈 시장의 유통 구조는 여전히 아날로그식이다. 제조사가 렌탈 전문 업체에 제품을 넘기면 판매원이 온라인이나 방문 판매를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직접 신청한 렌탈 서비스도 결국에는 판매원을 거친다. 서현동(37) 렌트리 대표가 렌탈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렌탈 추천 플랫폼 렌트리를 창업한 이유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만난 서 대표는 “렌트리는 불편한 렌탈 시장을 디지털로 ‘새로고침’ 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만든 서비스다”라며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계약 조건을 설계하고 판매자 역경매를 통해 소비자는 저렴하게 렌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라고 했다.

렌트리 서비스 소개 자료. /렌트리 제공

서 대표는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외국계 PE(Private Equity)의 인수합병(M&A)을 자문하는 업무를 담당하다가 렌트리를 창업했다. 그는 “서강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부터 창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졸업 후 바로 도전하기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라며 “비즈니스를 하려면 조금 더 식견을 갖추고 다양한 산업을 조망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라고 했다.

서 대표는 회계법인에서 다양한 기업의 M&A를 자문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렌탈 업체가 가전 제조업 대비 판매비 비중이 높다는 점을 발견하고 렌탈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렌탈 시장의 유통 구조에 관심이 생겨 들여다봤더니 대부분의 판매비가 비용 부담이 큰 방문 판매와 텔레마케팅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판매비 부담만 줄일 수 있으면 소비자가 더 저렴하게 가전을 렌탈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라고 했다.

서 대표가 렌탈 시장의 유통 구조를 디지털로 바꾸면 성장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기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판매비 비중이 높은 렌탈 시장이지만 국내 렌탈 시장은 매년 15%씩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국내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렌탈 시장은 판매자 중심의 아날로그식 유통 구조에도 지난해 16조원에서 올해 20조원으로 성장이 예상된다”라며 “빠르게 성장하는 렌탈 시장의 비효율적인 유통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렌탈 쇼핑 플랫폼인 렌트리를 만들게 됐다”라고 했다.

렌트리는 흩어져 있는 렌탈 상품을 모아 ‘렌탈 제품 추천’ ‘계약 조건 설계’ 등을 돕는다. 또 판매자 역경매 방식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서 대표는 “렌트리는 한곳에서 여러 회사의 렌탈 상품과 약정 조건을 비교할 수 있고, 불필요한 전화 상담 등을 배제해 유통 구조를 개선했다”라며 “상담은 100% 채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거래가 종결될 때까지 렌트리가 계약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계약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라고 했다.

렌트리는 판매원과의 상생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플랫폼이 아닌 불필요한 광고 지출을 줄이는 또 하나의 광고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서 대표는 “판매원의 경우 기존에는 고객 획득을 위해 성과와 연동되지 않는 광고비를 다양한 곳에 지출해야 했다”라며 “렌트리에 역경매 방식으로 판매원이 입점할 경우 거래가 성사될 때만 수수료를 내기 때문에 광고비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라고 했다.

서 대표는 렌트리를 렌탈 특화 커머스 플랫폼으로 키운다는 포부다. 생활가전을 넘어 어떤 제품이든 분납 형태로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렌탈 사용자의 가장 큰 불만은 긴 의무 사용 기간과 그에 따른 해지 위약금이다”라며 “합리적인 렌탈 시스템을 통해 어떤 제품이든 소비자가 원하는 기간 동안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렌탈 시장을 바꿔 나가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