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16기가비트(Gb) DDR5 D램.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삼성전자 제공

글로벌 IT 시장의 수요 부진과 주요 기업들의 재고치 증가에 따라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공급초과율이 10여년 만에 정점을 찍었다. 주요 D램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격차가 사실상 12년 전 D램 치킨게임 시절과 비슷한 수준으로 벌어진 것이다.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의 D램 사업 환경이 올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2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의 공급초과율은 112.5%로 지난 2011년 D램 치킨게임 당시 공급초과율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기 기준으로는 10여년 만에 최고치다. 공급초과율이란 시장 수요 대비 공급량을 백분위로 나타낸 숫자로, 숫자가 높을수록 공급량이 넘쳐난다는 뜻이다.

올해 1분기의 경우 PC, 서버, 모바일 등 D램의 주요 응용처에서 모두 110%를 넘나드는 공급초과율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재고털이'를 위해 물량 '바겐세일'에 나섰던 지난 4분기보다도 수치가 악화됐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요 수익처인 서버용 D램의 공급초과율이 110%에 육박하면서 올해 사업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D램의 공급초과율이 110%를 넘기는 건 건 흔치 않은 일이다. D램 시장 역사 전체를 살펴봐도 D램의 공급초과율이 110%를 초과한 것은 대부분 D램 시장의 '치킨게임(한 쪽이 이길 때까지 피해를 무릅쓰며 경쟁하는 게임)'이 한창이었던 시기였다. 당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D램 3강뿐 아니라 엘피다, 키몬다, 프로모스 등 다수의 경쟁 업체들이 시장 쟁탈전을 벌였다.

D램 시장의 공급과잉은 대형 기업들을 줄줄이 파산에 이르게할 정도로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2005년과 2008년 D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 기업들은 적자 상태에서도 공급을 늘리는 치킨게임을 벌인 바 있다. 이 시기에 공급초과율은 115% 수준이었다. 1년 내내 이어진 치킨게임 끝에 2009년 독일의 D램 업체 키몬다가 파산하면서 치킨게임은 일단락됐다.

2011년에 다시 벌어진 치킨게임 당시에도 113%에 달하는 공급초과율을 보여 주요 기업들이 극심한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이듬해인 2012년 일본 최대 D램 기업인 엘피다가 파산을 선언했고, 하이닉스 역시 파산 위기에 몰렸다가 SK그룹에 인수되며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 이후 D램 시장은 소수 업체들로 재편됐고 모바일, 서버 등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면서 장기 호황을 맞았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위)과 SK하이닉스 이천 M14 공장(아래).

올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공급초과 상태에 주요 시장조사업체들도 올해 D램 시황을 더욱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지난 1월 리포트에서 올해 D램(2기가비트 환산 기준) 평균 거래 가격을 0.47달러로 예상했다. 지난해(0.78달러)보다 40%나 감소한 수준이다. 이 예상치는 2021년 이후 3년간 가장 낮은 가격대이기도 하다.

D램의 판가 하락은 세계 메모리 업계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실적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4분기에 영업이익이 2700억원에 불과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10년 만에 1조7012억원의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또 1월 국내 메모리 해외 수출액은 전년 동월보다 57.3% 감소한 27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세트(완제품) 업체들이 메모리 반도체 구매를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일부 메모리 재고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틱한 감소세를 기대할 순 없다"며 "2분기 말이나 하반기부터는 소폭 수요 회복이 예상되지만 연간 전체로 봤을 때 D램 시장이 다운턴(Downturn)에 있는 것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