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다이슨에서 백팩도 출시됐나요? 예쁘다. 이거 얼마예요? 어디서 팔아요?”
지난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점심시간에 만난 지인이 기자의 백팩을 보며 물었다. 15인치 노트북을 넣을 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에 가방 후면에는 ‘dyson’ 글자가 선명했다. 특히 가방 후면 하단에는 다이슨 공기청정기를 상징하는 파란색의 둥근 고리(⊂⊃)가 부착됐다. 사실 이 백팩을 메고 출퇴근하면서 예쁜 디자인 때문인지, 구입하고 싶다는 지인이 많았다. 기자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백팩이다”라고 답했다.
사실 이번 체험에 사용된 백팩은 공식적으로 다이슨이 판매하지 않는 ‘비매품’이다. 이 가방은 지난 2019년부터 다이슨이 주요 도시를 비롯해 학생들이 등하굣길에 노출되는 공기질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프로젝트 제품이다. 1세대 제품을 거쳐 이번이 디자인을 개선한 3세대 백팩인 셈이다.
◇ 언제 어디서든지 ‘공기질’ 측정
다이슨 백팩 3개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다이슨 백팩을 착용해 봤다. 다이슨 백팩의 전체적인 디자인과 용도는 일반 백팩과 동일하다. 15인치 노트북이 들어갈 만큼 꽤 널찍했고 가방 어깨끈 쪽에는 여권 등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 등 쪽은 구멍이 뚫린 푹신한 소재를 사용해 땀을 흘려도 쉽게 마르도록 했고, 착용자의 등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도록 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백팩을 자세히 보면 가방 후면 아래쪽 파란색 둥근 고리 안쪽에 구멍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가방에 웬 구멍인가 싶지만, 이 구멍이 다이슨 백팩의 핵심 기능이다.
구멍 안에는 다이슨 공기청정기에 사용되는 공기질 센서가 장착돼 있다. 가방을 메고 학교, 회사, 지하철 등을 걸으면 공기가 가방 구멍을 통해 센서와 만나면서 이동경로상의 공기질이 측정되는 식이다. 위성항법장치(GPS)도 탑재해 공기질을 측정한 위치 정보도 함께 저장된다. 백팩과 연동된 스마트폰을 통해 공기질 데이터가 표시되고, 다이슨 서버로 전송되는 방식이다.
최근 미세먼지 등 공기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숨테크’ 산업이 관심을 끌고 있다. 보통 공기질은 각 정부의 환경부나 지자체에서 설치한 측정기로 데이터를 측정하며, 그 결과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기질 측정기가 건물 외부나 옥상 등에 설치되면서 사람이 실제 체감하는 지상의 공기질과는 결괏값이 다를 수 있다.
특히 집에서 버스·지하철, 학교·회사, 식당, 집으로 이어지는 하루 일과에서 마시고 있는 공기질에 대한 측정은 어렵다. 다이슨은 직장인, 학생들이 어디를 이동하든지 백팩을 메고 다닌다는 점에 착안해 공기질 센서와 GPS를 탑재한 다이슨 백팩을 개발하게 됐다.
백팩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백팩과 스마트폰을 연동시켜야 한다. 백팩안에 공기질 센서는 가방 내부에 있는 휴대용 배터리를 통해 전원을 얻는다. 1회 충전으로 하루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아이폰에 다이슨 에어 퀄러티(DAQ)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새로운 백팩 추가 메뉴를 누른다. 이후 센서 옆에 버튼을 누르면 백팩과 스마트폰 연동이 끝난다. 다만, DAQ 앱은 공개된 앱이 아니다. 이 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기질 측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별도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백팩의 원리는 간단하다. 다이슨이 자제 제작한 백팩의 구멍을 통해 공기가 가방 안으로 들어가 센서와 만나게 된다. 이 센서는 초미세먼지(PM2.5), 미세먼지(PM10), 이산화질소(NO2),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이산화탄소(CO2)와 같은 공기 오염원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스마트폰을 통해 다이슨 서버에 저장된다.
다이슨 AQ 앱을 열면 ‘서울특별시 X구 XX동′ 이라는 현재 위치와 함께 온도, 습도 등이 기본으로 표시됐다. 화면 오른쪽에는 초미세먼지, 이산화탄소·질소 등 항목별로 공기질 측정값이 표시됐다. 공기질이 좋을수록 ‘연두색→노란색→주황색→빨간색→갈색→보라색’ 순으로 표시됐다. 초미세먼지(PM2.5) 결괏값을 누르면 초미세먼지의 개념과 공기질 측정 기준을 설명하는 메뉴가 등장했다.
화면 왼쪽에는 해당 장소의 공기질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좋음’이 표시됐다. 또 하단에는 측정된 공기질을 항목별로 세부적으로 볼 수 있는 메뉴가 마련됐다.
다이슨 백팩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착용자의 이동 동선에 따라 변화하는 공기질 데이터를 측정·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지하철→회사→저녁식사 장소→버스→집’ 등 하루 동안 어떤 공기질에서 생활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공기질 결괏값을 지도에서도 볼 수 있어, 어떤 장소에서 공기질이 나빴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출퇴근길 대부분의 이동 동선에서 공기질 점수는 ‘좋음’(0~4등급)이었다. 다만, 철길이나 지하철, 아파트 등 대규모 공사가 있는 구간을 통과하면 미세먼지 수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회사의 경우 전반적인 공기질은 ‘좋음’이었지만 이산화탄소 수치는 한 단계 떨어진 ‘양호’를 보였다. 대체로 폐쇄된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수치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저녁 회식 장소였던 고깃집을 방문했을 때는 각종 연기로 오염도가 급증하면서 공기질 종합 평가 점수가 ‘심각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사람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백팩 구멍에 입김을 불어 넣었더니, 이산화탄소 수치가 1만1000ppm까지 급증했다.
◇ 다이슨은 팔지도 않는 백팩을 왜 만들었을까?
다이슨이 이 백팩을 만든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다이슨은 런던시와 킹스 칼리지 런던 대학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브리드 런던(Breathe London) 프로젝트’에 기술 협력사로 참여했다.
브리드 런던은 런던 시내 초등학생 2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으로, 학교를 등∙하교하면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 공기 오염원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는지 조사해 노출 정도를 줄일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는 프로젝트였다. 다이슨은 250명의 학생이 착용할 수 있는 배낭을 개발했다.
그 결과 학생들이 교문 근처로 왔을 때 오염원에 가장 크게 노출됐으며 자동차, 버스, 도보 이동, 자전거 혹은 킥보드 이용 순으로 이동 수단에 따라 대기오염 노출이 달랐다.
또 다이슨은 2020년 6~8월에는 서울을 포함해 도쿄, 방콕, 파리, 밀라노, 런던 등 총 14개 도시에서 공기 질 측정 배낭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될 경우 집안 내 실내의 초미세먼지 수치는 줄었지만, 외출하는 인구가 늘면서 실외 이산화질소 수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이슨은 공기청정기를 생산하는 기업인 만큼 이러한 프로젝트를 오랜 기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공기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공기질의 측정 단위 면적이 ‘국가→시도→동→주변 환경→코앞’으로 점차 세분화 되고 있다. 최근 다이슨이 공기 정화 헤드폰 ‘다이슨 존’을 공개한 것도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다이슨은 현재도 국내에서 공기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최근 다이슨은 영국 런던 패션위크 관계자들에게 백팩을 지급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폐쇄된 공간에서 사람이 몰려있고 의상 환복 등 복잡한 패션쇼 현장의 공기질을 측정하는 등 현장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현재 한국에서 측정되고 있는 공기질 데이터는 이르면 이달 중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