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로 전자계의 큰손 애플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국내 대표 부품업체 LG이노텍(011070)과 삼성전기(009150)도 한파를 피해 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들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코로나19 특수 영향으로 나란히 호실적을 기록했으나, 점차 전 세계 IT 수요가 바닥을 찍으면서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실적악화)를 기록한 것으로 예측된다.
2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이노텍 지난해 4기 매출 컨센서스(추정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4% 증가한 약 6조5060억원, 영업이익은 4% 감소한 약 4112억원으로 집계됐다. 앞서 증권가는 LG이노텍의 영업이익이 5000억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봤으나, 실적발표일이 가까워지면서 시장 기대치는 연일 하향 조정됐다. 증권사 대부분은 LG이노텍이 예측치를 크게 밑도는 1000억 후반~2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하락세를 보인 삼성전기는 전 사업부가 예상보다 부진한 성적을 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의 지난해 4분기 매출 전망치는 약 2조912억원, 영업이익은 약 142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미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4%, 555% 감소한 수치이지만 실제 실적은 여기서 더 악화할 전망이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4분기 ‘IT 공룡’ 애플을 포함한 전 세계 고객사의 물량 조정이 심화하면서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카메라 모듈 1위 LG이노텍은 아이폰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데, 전체 매출에서 애플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애플 공급망 상황에 따라 실적도 널뛴다. LG이노텍은 지난해 9월 출시된 아이폰14 카메라 모듈 물량의 75% 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알려져 하반기 실적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아이폰 최대 생산 공장인 중국 폭스콘 소속 근로자들이 연말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반발해 공장을 이탈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아이폰14 생산량이 약 1000만대 급감했고, 쪼그라든 물량 여파는 LG이노텍 성적표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카메라 모듈 생산 가동률이 하락해 고정비 부담이 커진 데다 전반적인 IT 수요 부진으로 기판 부문 매출도 둔화했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폭스콘 정저우 공장의 아이폰14 생산 차질 영향이 예상 대비 오래 지속되고 있다”며 “디스플레이 업황 부진의 영향으로 기판사업부의 실적 부진도 예상된다”고 했다.
삼성전기는 LG이노텍만큼 애플 의존도가 높지 않지만,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애플의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M2 프로세서의 반도체 패키지 기판인 플립칩(FC)-볼그리드어레이(BGA)를 공급하고 있다. FC-BGA는 전기 신호가 많은 고성능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메인보드와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기판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삼성전기가 M2 프로세서 출시 후광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삼성전기 역시 PC를 비롯한 전체 IT 기기 수요 감소 여파로 전체 부품 주문이 감소해 실적이 악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에 물량을 공급한다고 해도 IT용 부품 수요가 전반적으로 줄어들면서 주문 자체가 크게 감소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주력인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수요가 급감하고 평균판매단가(ASP)까지 내려앉으면서 수익성이 크게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IT용 MLCC 공장 가동률이 급락해 고정비가 천정부지로 늘면서 적자를 볼 정도로 상황이 악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MLCC 수요 감소폭이 크고, 모바일 메모리 반도체 기판의 판가 하락폭이 확대됐으나, 카메라 모듈의 재고 조정이 진행됐다”며 “4분기 MLCC 수익성은 6년 만에 최저인 손익분기점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광학 통신 부문은 계절적 수요 감소에 더해 북미 고객사(애플)향 폴디드줌 트리플 카메라 공급이 기대보다 부진했고, 반도체 기판 부문은 PC 수요 둔화로 수익성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인 IT 제품의 수요가 약할 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로 재고 수준이 높아져 있던 부분 때문에 부품 업체들이 체감하는 수요 감소폭이 극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전방 산업인 TV, PC, 스마트폰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업계는 고사양 부품 공급이 두 회사 실적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4분기 주춤한 LG이노텍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폰15 신제품에 이른바 ‘카툭튀(카메라가 툭 튀어나옴)’를 최소화한 폴디드(folded·접히는)줌을 공급하면서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박형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신제품 폴디드줌이 공급되며 카메라의 평균판매가격이 상승한다”며 “고화소 카메라와 전면 카메라의 매출 비중도 늘어나 수요 불확실성과 세트 판매 감소 우려를 고려해도 전년 대비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적이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삼성전기는 올 2분기부터 상황이 개선될 전망이다. 우선 올 상반기 출시 예정인 갤럭시 S23 울트라 모델에 2억 화소급 고화소 카메라 모듈을 공급해 판가 상승효과를 보고, 테슬라 등에 공급하는 전장용 카메라 모듈로 수익성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또 MLCC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위드코로나 정책으로 중국발 수요도 점차 회복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