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 가스를 생산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산소공장의 대형 공기분리장치(ASU). /포스코 제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수급 불안정으로 지난해 50배 넘게 치솟았던 반도체 필수 소재 네온 가격이 9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으며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원자재 수요도 덩달아 줄어든 영향이다. 특히 국내 네온 수입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산 네온값이 급감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동시에 국내 기업이 네온 등 희귀가스 국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공급이 안정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에 수입된 네온·크립톤·제논(크세논) 등 필수 원자재 가격이 지난해 최고치와 비교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하락폭이 가장 큰 소재는 네온이다. 지난해 12월 네온의 t당 수입 가격은 최고가를 찍은 지난 6월 290만달러(약 37억7500만원)보다 약 80% 내려온 58만3900달러(약 7억2000만원)를 기록했다. 9개월 만에 찍은 최저가로, 지난해 11월(74만8400달러·약 9억7000만원)과 비교하면 약 22% 하락한 금액이다.

크립톤의 t당 수입 가격은 52만2600달러(약 6억4000만원)를 기록해 8개월 만에 최저 가격으로 내려왔다. 가장 많이 오른 지난해 8월 154만2700달러(약 19억원)보다 약 66% 하락했다. 제논의 가격은 955만6100달러(약 118억3000만원)로 최고가로 치솟은 지난해 9월 1344만1400달러(약 193억원)에 비해 약 29% 내려왔다. 지난해 11월보다는 약 6% 하락했다.

그래픽=손민균

네온·크립톤·제논은 반도체 공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소재다. 네온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빛을 이용해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엑시머 레이저의 주재료다. 크립톤과 제논은 회로 패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는 식각공정에 주로 쓰인다. 이 가스들은 제철 과정에서 채집되는데, 원료 상태로 국내에 들여와 정제 및 가공 과정을 거친 뒤 반도체 업체에 공급된다.

국내 업체들은 이런 희귀가스를 주로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왔으나 러시아 침공으로 지난해 초부터 자재 공급량이 확 줄었다. 국내업체들은 중국산 수입 비중을 전체 수입 물량의 80~100%까지 늘렸다. 공급망이 줄어들자 중국은 네온 가격을 평년 대비 최대 40배까지 올려받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로 반도체 업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악화하자 네온 등 희귀가스 수요도 점차 줄기 시작했다. 지난달 중국산 네온 수입 가격은 1t당 16만3100달러(약 2억원)로 지난해 11월 74만8700달러(약 9억2000만원)와 비교할 때 한 달 만에 약 78% 급락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통상 네온 등 희귀가스는 최소 3개월 치 재고를 미리 확보해두는데, 지난해 하반기 급감한 반도체 수요가 올해 상반기까지 회복될 것 같지 않아 원자재 구비량도 줄이고 있는 추세다”며 “게다가 국산 희귀가스 공급량이 늘어나 수입 물량은 더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희귀가스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 국산화를 빠르게 추진한 것이 수급을 안정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포스코는 올해 반도체용 가스 제조업체 TEMC와 함께 네온 국산화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네온 사용량의 40%가량을 국산으로 대체했고, 내년까지 이 비중을 100%로 늘릴 계획이다. 또 올해 6월까지 국산 크립톤과 제논 가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국산 네온 도입에 이어 포스코와 협력해 제논 가스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