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미국 테네시공장 세탁통 생산라인. 로봇이 스테인리스 스틸을 둥글게 말고 용접해 세탁기의 주요 부품인 세탁통을 만들고 있다. /LG전자 제공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남동부 테네시주의 작은 마을 클락스빌. LG그룹의 이름을 딴 ‘LG 하이웨이’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납작한 직사각형 형태의 초대형 흰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상단에는 붉은색 ‘LG’ 로고가 선명했다. 이곳은 한국 기업이 해외에 건설한 공장 중 유일하게 ‘등대공장’으로 선정된 LG전자(066570)의 테네시 스마트 공장이다. 등대공장은 등대가 밤하늘에 불을 비춰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해 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이끄는 공장을 말한다. LG전자 테네시공장은 미국과 캐나다 등에 공급되는 세탁기가 생산된다. 최근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세트로 구입하는 북미 소비자들의 소비성향을 반영해 건조기 라인이 추가됐다.

공장 내부에선 166개의 무인운반로봇인 AGV(자동경로차량)가 쉴 새 없이 부품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한편에선 로봇팔이 육중한 철판을 들어 올려 옮기더니 순식간에 동그랗게 말아져 세탁통으로 변신했다. 로봇팔에 달린 3차원(3D) 카메라는 접지 부분의 흠집이나 작은 오차를 체크하고 있었다.

LG전자 미국 테네시 스마트 공장 내부 생산라인 모습

◇ 美 테네시공장, 등대공장 선정

LG전자 생활가전 글로벌 핵심 생산기지인 미국 테네시공장이 지난 13일(현지 시각)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등대공장에 선정됐다. LG전자는 창원 공장에 이어 두 번째로 등대공장을 갖게 됐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 세운 공장 중 최초의 등대공장이기도 하다. 2018년 가동을 시작한 테네시공장의 전체 부지는 총 125만㎡로 축구장 175배 크기에 해당한다.

LG전자 미국 테네시공장 전경. /박성우 기자

테네시공장은 최근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한 라인에서 제조하는 ‘완결형 통합생산체제’를 갖춘 건조기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했다. 그간 탑로더(통돌이)와 드럼세탁기 등 세탁기 생산라인 2개만 가동해왔지만, 지난해 9월 건조기 라인 시험 가동 후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LG전자는 건조기 라인에 3000만달러(약 372억원)를 추가 투자했다. 누적 투자금액은 3억9000만달러(약 4836억원)에 이른다.

테네시공장의 3개 라인은 각각 드럼, 탑로더, 건조기를 생산한다. 연간 생산능력은 세탁기 120만대와 건조기 60만대다. 송현욱 LG전자 테네시 법인 생산실장은 “테네시공장의 생산 능력은 세탁기를 초당 13~14대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인데, 현재 11~12대 정도 생산하는 것으로 맞춰져 있다”라며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늘리거나 증설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테네시공장 바로 옆에는 공장 사이즈와 같게 자로 재어 놓은 듯하게 터를 닦아둔 부지가 조성돼 있었다. 공장 증설을 위해 남겨둔 부지인 것이다.

LG전자는 이번 건조기 현지 생산을 통해 물류비, 관세, 배송시간 등을 줄여 수요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비 증가는 원가 인상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또 각종 비용이 줄면 원가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 부품만 6000번 옮기는데 로봇이 ‘척척’

테네시공장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로봇을 활용해 공정을 자동화했다. 여기에 60년 이상의 제조 노하우까지 집약돼 제조혁신을 이끌고 있다.

테네시공장에 도입된 완결형 통합생산체계는 공급망 교란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부품 공급 지연과 같은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공급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철저한 품질조건을 라인 전체에 일괄 적용해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품질을 높였다.

테네시공장은 금속 프레스 가공, 플라스틱 사출 성형, 도색 등 부품 제조를 내재화한 것이 특징이다. LG전자가 자체 개발해 사출공정에 적용한 ‘지능형사출시스템(Intelligent injection molding system)’은 금형에 온도·압력센서를 달아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해 최적의 사출 조건을 유지하도록 관리한다. 테네시공장의 부품 생산성은 기존 대비 약 20% 향상됐고 불량률은 60% 정도 개선됐다.

완성된 건조기를 보관장소로 이동시키기 위해 로봇팔이 건조기를 쌓아 올리고 있다. /LG전자 제공

또 통합생산라인에서 세탁·건조통과 인버터 DD모터 등 무거운 부품 조립, 화염이 발생하는 용접, 손이 많이 가는 나사 체결 등 위험하고 까다로운 작업은 로봇이 한다. LG전자는 생산기술원에서 제작한 무인운반차(Automated Guided Vehicles, 이하 AGV)를 테네시공장에 166대 도입했다. AGV는 최대 600㎏의 적재함을 최적의 경로로 자동 운반한다.

실제 이날 공장 한쪽에는 사출 공장에서 갓 찌어진 ‘바깥튜브(Outer Tub·세탁통 안쪽을 감싸는 플라스틱 구조물)’가 아파트 2~3층 높이의 선반에 줄줄이 쌓여있었다. 바깥튜브가 정상 범위 사이즈로 만들어지기까지 3~4시간의 숙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송 실장은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바깥튜브를 옮기는 등 하루에 6000번 이상 부품을 나르는 작업을 해야 했다”라며 “하지만 AGV가 3만개 이상의 공장 내 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단 이동거리를 찾아 움직이면서 시간과 인력을 절약하고 있다”고 했다.

무인운반차(AGV)가 세탁기 바깥튜브 부품을 나르고 있다. /LG전자 제공

또 테네시공장은 1, 2층 간 부품을 이동시키는 공중 컨베이어도 갖춰 입체적인 물류 자동화를 이뤄냈다. 자재 공급과정을 무인화함으로써 직원들은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또 테네시공장은 2021년부터 사용 에너지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그 결과, 2021년 실질적인 탄소배출량은 2020년 대비 63% 줄었다.

◇ LG전자, 美 소비자만족도 1위

테네시공장은 품질면에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ACSI가 생활가전을 판매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소비자 만족도’ 평가에서 LG전자는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테네시공장의 자동화율을 현재 63% 수준에서 연말 70% 가까이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활가전 제조공장 기준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특히 LG전자는 올해 공장 내 5세대 이동통신(5G)을 도입해 공장 시스템과 로봇 등을 초고속의 5G 네트워크 묶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프레스 가공을 통해 만들어진 세탁기 커버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다음 공정 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류재철 LG전자 H&A(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 사업본부장(사장)은 “테네시공장은 건조기 라인을 추가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 일체형 세탁건조기 워시타워 라인까지 신설할 예정이다”라며 “세탁가전 생산 전초기지이자 북미 생활가전 사업 성장의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