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에 걸린 깃발 아래 노란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주력인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지난해 4분기 사상 초유의 어닝쇼크를 기록한 가운데 올해 1분기부터 반도체(DS) 부문이 적자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적자는 14년 전이 마지막으로, 주력 사업이 예상보다 악화하면서 지난해 10월 회장에 취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부담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감산과 투자 축소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늦어도 하반기에는 투자를 축소하는 등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올 상반기 메모리 모두 적자 전환 예상

1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잠정 집계된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9% 급감한 4조3000억원이다. 시장 기대치(6조9200억원)를 크게 밑도는 성적을 낸 건 반도체 부문 실적 부진 때문이다. 잠정 실적에서는 사업 부문별 구체적인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증권가는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80% 이상 급감해 1조원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중 낸드플래시 사업부는 적자 규모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반도체 부문이 벌어들인 이익이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실적을 견인한 호시절과 정반대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지난 4분기 실적이 바닥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는 최소 올 상반기까지 낸드플래시 사업은 적자 행렬을 이어가고, D램 사업도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적자를 기록한 건 2009년 1분기가 마지막이다. 당시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률은 -13%까지 악화했는데, 올 상반기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가격이 여전히 기존 예상보다 가파르게 하락 중이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 메모리의 가격 하락율이 출하량 증가율을 압도해 수익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D램 가격은 전 분기에 비해 13~18% 추가 하락할 전망이다.

이처럼 수요가 예상보다 저조하자 삼성전자가 재고 소진을 위해 가격 하락 전략을 펼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삼성전자가 누적 재고에 대한 정책이 부재했던 것에 반해 지난해 말에는 적극적인 가격 인하를 통한 수요 촉진을 시도했다"며 "이에 이익이 급격하게 악화했으나 전략적인 조치가 이뤄졌다는 것은 고무적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 "P3 공장 조업도정상 달성 이후 하반기부터 투자 축소"

업계는 수요 촉진 전략에서 더 나아가 올해 내에 투자 축소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투자를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를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메모리반도체 업체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영건 연구원은 "신규 설비 투자 규모를 수정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당초 올해 설비 투자 계획이 캐파(Capa·생산 능력) 확대보다는 경쟁사보다 앞선 기술력 유지를 위한 (보완) 투자 성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세공정을 고도화하기 위한 설비투자는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감산을 거부해 온 논리는 이제 시장의 지지를 얻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코로나19 팬데믹 거품이 붕괴되고 남은 잉여 캐파와 재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감산과 투자 감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공급·투자 축소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현지시각)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시설 투자 감축 계획에 대한 질문에 "아직까지 줄이겠다고 공식 발표한 적도 없고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이런 기조는 상반기까지 유지되다가 하반기에 반전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클린룸 구축을 완료한 평택 P3(3생산라인) 조업도를 빠르게 끌어올려야 더 큰 손실을 피할 수 있어, 올 상반기에는 계획대로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통상 반도체 공장 내 클린룸이 구축되면 높은 수준의 감가상각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면 원가에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 조업도 손실 등 비용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도 클린룸 구축 시점 이후부터는 장비를 빠르게 반입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라며 "삼성전자도 조업도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장 투자를 축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 연구원은 "정상 조업도가 달성된 이후 하반기에는 캐펙스(설비투자)를 축소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그전까지는 연간 투자 계획에 변동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경쟁사의 투자를 억제하기 위한 '블러핑'(외부를 헷갈리게 하는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