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수급 불안정으로 올해 55배까지 치솟았던 반도체 필수 소재 네온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핵심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기업이 네온 등 희귀가스 국산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영향으로 분석된다. 다만 최근 두 달 사이 국내에 수입된 네온은 전량 중국산(産)으로, 국산화와 더불어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미·중 패권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에 수입된 네온의 t당 가격은 10월(77만6600달러·약 10억1000만원)보다 3% 소폭 하락한 74만8400달러(약 9억7000만원)를 기록해 7개월 만에 두 달 연속 십만달러대를 유지했다. 지난 9월 241만6900달러(약 34억6900만원)와 비교하면 69% 하락했다.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가파르게 상승하던 네온 가격은 지난 6월 전년 대비 약 55배 오른 290만달러(약 37억7500만원)로 최고치를 찍었다. 9월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강세를 이어가다 10월부터 급격히 하락한 것이다. 지난달 수입 네온 가격은 여전히 작년보다 약 5배 비싸지만, 가격 차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4분기 반도체 업황 악화로 네온 가스 수요가 감소했고, 동시에 국내 기업들이 국산 네온 비중을 더 늘리고 있다"며 "통상 3개월 치 원자재 재고를 미리 확보해두는데, 네온은 전 분기보다 값이 많이 내려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네온을 비롯한 크립톤·제논 등 희귀가스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꼭 필요한 핵심 소재다. 그중 올해 가장 가파르게 값이 오른 네온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빛을 이용해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엑시머 레이저의 주재료다. 과거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산 네온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이들 국가의 공급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러시아가 미국·한국 등 비우호국 대상 희귀가스 수출 제한을 걸어 네온 수급 상황은 악화했다. 기존 공급망이 끊기자 국내 기업은 올해 2분기부터 중국산 수입을 늘렸고, 중국은 네온 가격을 평년 대비 최대 40배까지 올렸다.
100% 수입에 의존하던 네온 등 희귀가스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정부와 국내 기업은 국산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포스코는 올해 반도체용 가스 제조업체 TEMC와 함께 네온 국산화에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희귀가스 추출 관련 기술이 있어도 크게 주목하지 않고 수입에 의존해 왔으나, 공급망 위기로 정부가 앞장서 소재 개발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있다"며 "이에 따라 네온 가스부터 제논, 크립톤 등의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에 네온을 공급하는 TEMC는 네온에 이어 크립톤과 제논 가스 국산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희귀가스를 공급 중인 원익머티리얼즈 등 역시 국산화 흐름에 힘입어 기술 개발을 늘리고 있다.
국산화 노력에 따라 현재 SK하이닉스는 네온 사용량의 40%가량을 국산으로 대체했고, 2024년까지 국산 비중을 100%로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내년 6월까지 국산 크립톤과 제논 가스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앞서 윤홍성 SK하이닉스 FAB원자재구매담당 부사장은 "여러 협력업체와 기존 설비를 활용해 적은 비용으로 네온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며 "원자재 수급 위협을 피해 첨단 반도체 기술에 필요한 자원을 계속 확보하겠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국산 네온 도입에 이어 포스코와 협력해 제논 가스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
다만 여전히 핵심 소재의 대중(對中) 수입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다변화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0~11월 국내에 들어온 네온 39.3t 전량이 중국산이다. 러시아산 네온은 올 5~6월 극소량 수입 이후 공급망이 뚝 끊겼고, 우크라이나산은 두 달 전부터 수입이 안 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는 최근 한국이 포함된 비우호국 대상 희귀가스 수출 제한 기간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급망 불안 상황은 이제 기업 경영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며 "기술 개발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해 핵심 소재 국산화율을 늘려가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다각화를 함께 추진해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