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최첨단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에서 TSMC에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다. 반전을 준비 중인 삼성전자는 오는 2024년부터 파운드리 시장에서 역전의 분기점을 만들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목표는 경쟁사이자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로부터 최대 고객사인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기업)의 칩 주문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2024년 새로운 첨단 공정을 도입하는 동시에 미국 현지 신공장을 가동해 주요 고객사들을 다시 삼성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성이 처음으로 TSMC의 공정 전환 속도를 추월했던 8년 전 ‘투트랙’ 전략의 복사판이다.
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 게이트올어라운드(GAA) 2세대 공정을 도입하고 안정화시키는 시기를 오는 2024년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시기와 맞물리도록 로드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3㎚ 2세대 공정이 안정되는 즉시 미국 테일러 공장으로 핵심 인력을 파견해 퀄컴,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들과의 협력을 시작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 양산을 시작하며 기존 ‘핀펫(FinFET) 기술’ 대신해 ‘GAA(Gate-All-Around)’ 신기술을 도입했다. 핀펫 공정은 상어 지느러미처럼 생긴 차단기로 전류를 막아 신호를 제어하지만 GAA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을 4면으로 둘러싸 전류의 흐름을 더욱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아직 핀펫 방식을 고집하는 TSMC보다 삼성전자 기술이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2024년에 3㎚ 공정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3㎚ 2세대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신기술을 미국 공정에 먼저 도입해 현지 고객사들과의 접점을 늘리는 이 방식은 과거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TSMC를 기술적으로 추월했던 2014년과 비슷한 전략이다. 당시에도 삼성전자는 14㎚ 핀펫 공정 개발과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 대한 11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한꺼번에 단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했다. 2014년 이전까지 텍사스 오스틴 공장은 65㎚에서 28㎚대의 오래된 공정만 운용해왔지만 당시 삼성전자 경영진은 퀄컴의 스냅드래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더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퀄컴, 엔비디아 등의 대형 고객사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힌다는 이점뿐만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기술 교류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이었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해 삼성전자는 퀄컴의 14㎚ 모바일 칩을 수주한 데 이어 엔비디아의 물량까지 가져오며 TSMC에 뼈아픈 타격을 입힌 바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약 170억달러(22조1408억원)를 투입해 오는 2024년 가동을 목표로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지난해 11월 투자를 확정한 지 1년째로, 골조 작업에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중 건물 건설이 마무리되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장비가 반입될 예정이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최신 기술뿐만 아니라 생산능력을 확대해 더 많은 칩 생산을 수주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기술력 하나뿐만 아니라 생산가능한 볼륨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2014년 삼성전자는 더 많은 퀄컴의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와 손을 잡고 14㎚ 공정을 이전하기도 했는데 이는 생산물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제휴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전략을 의식한 듯 TSMC 역시 적극적으로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앞서 TSMC 창업자 겸 전 회장인 모리스 창은 지난 2일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친 후 현지 기자들과 만나 “3㎚ 생산 공장은 5㎚ 생산 공장과 같은 애리조나주 부지에 위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