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D램 생산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 우시공장이 미·중 반도체 갈등으로 '마더팹(Mother Fab)'인 이천공장으로부터 최신 생산공정을 이식받을 수 없게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는 최악의 경우 장비를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미국 제재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더팹은 반도체 기업에서 최신 생산 공정 기술이 우선 적용되는 공장을 의미한다. 마더팹에서 공정 전환이 성공하면 추후 다른 공장으로 최신 공정을 확산하는 것이 반도체 업계에서 통용되는 공장 운용 프로세스다. 실제 SK하이닉스 최고의 연구개발(R&D) 엔지니어들과 공정 전문가들이 모두 이천에 모여있고 최초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도입된 곳 역시 이천이다.
2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최신 D램 공정이 적용되는 이천공장과 중국 우시공장의 D램 생산공정의 기술 격차가 서서히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회사 내부에서는 EUV 노광 장비를 투입한 이천공장과 미국 제재로 현재 수준에서 더는 발전된 장비를 들여놓을 수 없게 된 중국 공장과의 생산성 격차가 계속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SK하이닉스는 과거 공장별 미세공정 비중을 공개해왔지만, 최근 이조차 비밀에 붙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가 SK하이닉스의 분기별 웨이퍼(반도체 원판) 처리량을 전망한 자료를 살펴보면 이천 M14 공장과 M16 공장은 미세공정 전환에 따른 프로세스 변화로 웨이퍼 투입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지만, 유일하게 중국 우시공장만 지난 1분기부터 오는 2023년 말까지 웨이터 투입량을 월 16만장으로 고정시키는 방향으로 계획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천 공장은 D램에 EUV를 적용해 1b(10㎚급 5세대) 공정을 내년 1분기 중에 진행할 계획이다"라며 "반면 중국에는 새로운 장비도, 기술도 적용할 수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의 구공정을 이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b는 기존 최신 D램 생산공정인 14㎚(1a) 공정보다 회로 선폭을 더 줄인 12㎚ 생산공정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중국 우시공장의 경우 한국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와 상대적으로 낮은 투자비용 등으로 SK하이닉스의 D램 영업이익률 상승에 일정 부분 기여해왔으나, 시간이 갈수록 뒤처질 수밖에 없는 미세공정 전환에 따라 생산 측면에서 가진 이점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최대 매출처이자 수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D램의 수익성 확보에 갈수록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이를 시인하듯 SK하이닉스는 지난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우시를 포함해 중국 공장에 문제가 생기면 공장을 매각하거나 장비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비업계에서는 현재 SK하이닉스가 운용하고 있는 설비를 현지에서 매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반응이다. 중국의 D램 굴기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만큼 미국 정부에서 절대적으로 불허할 것이 뻔하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는 현재 가능한 방안은 우시 공장의 장비를 한국으로 다시 들여오는 것뿐인데 이 과정에서 생산능력 손실을 비롯해 D램 시장에서 영향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릴 수도 있어 도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국 장비 수출 통제와 관련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미국으로부터 1년 유예를 받아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SK하이닉스는 또 미국 제재로 중국 공장 내 EUV 공정 적용이 어려워질 경우 해당 공정을 한국으로 들여와 진행하는 '백업 레이어' 방식으로 대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