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빠르면 이달 말 개최할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이프 카카오(if kakao) 2022에서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겪은 대규모 서비스 장애의 기술적 원인, 대응 실책 등 재발 방지 대책을 공개한다. 무료 서비스 이용자들의 피해 보상안도 나올지 주목된다.

카카오는 앞서 정치권의 압박과 도의적 책임으로 무료 서비스 피해 보상 기준 마련에 착수했지만, 자칫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에 직면했다. 무료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보상할 법적인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 양대 정보기술(IT) 기업 중 한 곳이 과도한 보상을 집행하면 여론이 요구하는 정도에 따라 보상하는 관행이 업계에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17일 IT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올해 안에 이프 카카오를 개최한다. 남궁훈 전 카카오 각자대표는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에서 카카오 대표이사직을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분과 재발방지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겠다고 밝히면서 "향후 있을 이프 카카오를 통해 공유 세션을 만들고 '만약 카카오가 이랬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상황을 알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그는 "재발 방지를 위해 인터넷데이터센터(IDC)는 무엇을 해야 하고, IDC의 소방 관제는 어떻게 해야 하며, 복구 시스템은 어떻게 잘못 구성했고, 어떻게 구성돼야 이상적이라고 판단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사회에 공유하며 마지막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홍은택 카카오 단독대표도 이후 지난 3일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번 서비스 장애와 관련한 기술적 개선 사항을 최대한 공개해 한국 IT업계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신뢰 회복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이 지난달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를 찾은 가운데 발화지점 지하 3층 전기실에 비상 축전기가 화재로 전소돼 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카카오는 지난달 15일 발생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주요 서비스가 127시간 30분(5일 7시간 30분)간 멈춰서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보상 절차 검토에 들어갔다. 이중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책 수립은 상당 부분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보상 절차 검토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료 서비스 피해 보상 문제가 대두되면서다. 카카오는 유료 서비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1차 보상은 일단 마친 상태다.

유료 서비스와 달리 무료 서비스 피해는 그 규모와 적절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카카오는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6일까지 총 19일간 피해 사례를 접수 받았는데, 업계는 이 기간 10만건 안팎이 접수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엔 단순 항의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게 카카오 측 설명이다. 유료 서비스 이용자 대부분이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만큼 유·무료 피해 내용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카카오톡(톡채널)과 연계한 광고, 주문접수 등 피해 종류를 세분화하면 셈법은 더 복잡해진다.

카카오는 학계, 소상공인, 산업계, 이용자 및 소비자를 대표하는 단체와 함께 보상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카카오는 지난 14일 공정 거래·소비자 전문가, 소상공인연합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소비자연맹과 함께 '1015 피해 지원 협의체'를 구성한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첫 회의를 열고 각 단체의 참석자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는 협의체를 구성해도 보상안 마련이 지지부진할 것으로 본다. 무료 서비스 피해에 대한 보상은 이렇다 할 국내외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결제·충전 등 서비스 오류를 일으킨 네이버페이는 상품 배송이 지연된 이용자와 광고 사업자에 한해서만 보상을 진행했다. 구글, 트위터 등 주기적으로 장애가 발생하는 해외 빅테크 기업은 보상에 대한 언급도 잘 하지 않는다. 이례적으로 메타가 지난해 10월 유료 서비스 이용자인 광고주에 서비스 중단 시간만큼 광고비를 면제해줬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과 한국노총 전국연대노동조합 플랫폼 운전자지부 구성원들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카카오 먹통 사태에 따른 대리운전노동자 피해 보상 및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나마 이번 사태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KT 아현국사 화재도 동일 비교는 어렵다. KT는 2018년 11월 발생한 이 화재로 유료 가입자에게 1개월분의 요금을 감면해주고, 연매출 30억원 이하의 소상공인 중 카드 결제·주문을 못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1인당 40만~120만원을 지급했다. 약관에 없는 보상이었지만, 무료가 아닌 유료 서비스 장애에 따른 간접 피해를 보상했다는 점에서 카카오 사례와 구분된다. KT가 해당 보상 절차를 마무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에 조금 못 미치는 333일이다.

법원이 서비스 장애에 따른 특별손해를 인정하지 않은 판례도 있다. 특별손해는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추가로 발생한 손해를 말한다. 특별손해의 경우 손해를 입힌 자가 특별손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사정을 알 수 있었거나 알았을 경우에만 배상 책임이 발생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4부(재판장 이대연)은 2016년 2월 "심리 결과 약관에 따른 보상이 이뤄졌다. 피고인이 입은 손해는 특별손해에 해당돼 SK텔레콤이 배상할 책임이 없다"며 대리기사와 일반인 등 18명이 SK텔레콤을 상대로 낸 26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SK텔레콤은 2014년 3월 5시간 40분동안 서비스 장애를 겪은 뒤 2차 피해를 입은 가입자 560만명에게 기본료와 부가 사용료의 10배를 보상했다.

업계는 카카오가 어떤 선례를 남길지에 주목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료 서비스는 기업이 각종 비용을 부담하면서 말 그대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무료 서비스도 이용자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해야 한다'는 기조가 생기면 앞으로 이를 제공하는 기업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카카오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사기업으로서 경영적 과오를 빚은 건데 정치권이 마치 공기업 대하듯 높은 잣대를 대는 느낌이 있다"며 "당장의 보상보다 장기적인 재발 방지 대책에 더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