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이 국회 법안심사 문턱을 넘었다. 기존 방송통신발전기본법과 정보통신망법을 손봐 기업의 데이터센터 관리를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앞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하면서 비슷한 법안의 통과가 무산됐지만, 올해는 대부분 국민이 사용하는 카카오 주요 서비스가 총 127시간 30분(5일 7시간 30분)간 멈춰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기류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지난 15일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2소위)를 열고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기업과 SK C&C 등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서버, 전력 장치 선로를 여러 경로로 구축하도록 의무화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이 단독으로 참석해 법안을 처리했다. 카카오 먹통 사태 직후 여야 의원 3명(박성중·최승재 국민의힘 의원,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의결된 개정안을 보면 의원들은 우선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는 대상인 주요 방송통신사업자에 ①주요 인터넷 기업(부가통신사업자로서 이용자 수 또는 트래픽 양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②주요 데이터센터 사업자(집적정보통신시설 사업자 등으로서 시설 규모, 매출액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포함시켰다.
의원들은 또 재난관리기본계획에 ①긴급 복구를 위한 체계 구성(방송통신설비의 연계 운용 및 방송통신서비스 긴급복구를 위한 정보체계의 구성)과 ②배터리나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등의 분산 및 다중화(서버, 저장장치, 네트워크, 전력공급장치 등의 분산 및 다중화 등 물리적·기술적 보호 조치)를 넣었다. 해당 개정안이 시행되면 앞으로 카카오나 SK C&C 같은 회사는 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로부터 재난관리계획의 이행 여부에 대한 지도 및 점검을 받게 된다.
과방위는 이날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함께 의결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데이터센터 사업자에 대한 정기 점검 권한을 부여하고,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서비스 장애 발생 시 중단 현황, 조치 등을 과기정통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이다. 카카오처럼 데이터센터를 임차해서 사용하는 사업자도 데이터센터 보호조치 의무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은 최종 제외됐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부가통신사업자가 정기적인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 이행 현황 관련 자료, 트래픽 양 현황 등을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내도록 하고, 국내 대리인의 업무 범위에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이행을 더하는 것이 골자다.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실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재난 발생에 따른 대규모 서비스 장애의 재발 방지를 위해 방송통신재난관리계획을 수립·이행해야 하는 주요 방송통신사업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취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부가통신사업자의 대부분이 국내 중소기업이고, 기간통신역무에 준하는 부가통신역무 제공사업자를 포함하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인 점을 고려할 때, 부가통신사업자의 범위 설정이 중요한 쟁점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의결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은 2018년 11월 KT 아현국사 화재를 계기로 통신 인프라에 관한 의무 필요성이 커지면서 2020년 5월 박선숙 전 민생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내용이 유사하다. 이 법안은 네이버와 카카오의 ‘이중 규제’ 반발에 부딪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좌초됐다.
당시 국회 분위기는 박 전 의원의 법안에 부정적이었다. 그해 법사위 전체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산업 발전에 저해되는 과잉 규제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고, 정점식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정부의 점검과 관련해) 사업자들이 영업비밀 누출, 프라이버시 침해를 굉장히 염려하고 있다”며 반대했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이에 법안의 보류를 결정했고,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올해는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법 개정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지난달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주요 서비스가 5일 넘게 멈춰선 이후 국회 내부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국민 생활과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도 주요 방송통신사업자로 분류되지 않아 재난관리계획 점검을 받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사태 직후 “연말 이전에라도 (법 개정을) 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 관련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더욱이 올해는 네이버, 카카오에 이어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라는 변수까지 등장했다. 암참은 과방위에 보낸 의견서에서 “미국·일본 등 다른 국가와 비교해 개정안에 담긴 규제가 매우 부담스러운 수준이다”라며 “부가통신사업자가 단순히 많은 이용자가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적 성격을 띠는 주요 방송통신사업자처럼 공적 의무를 부담하라는 것은 형평에 매우 반한다”고 주장했다.
암참은 국내에서 클라우드 사업을 전개하는 자국 기업들을 대변하기 위해 이 같은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암참 회원사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은 전 세계 300곳이 넘는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클라우드 업계 관계자는 “당초 여야 가리지 않고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을 쏟아내던 국회는 구글의 여론 공세 이후 신중론으로 돌아선 바 있다”며 “구글을 비롯한 거대 해외 기업들이 힘을 합쳐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에 반대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의결된 5건의 개정안은 여야 협의를 거쳐 과방위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전체회의에서 의결되면 법사위, 본회의를 거쳐 공포·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