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국내 양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성적표가 엇갈렸다. 두 회사 모두 애플 제품에 쓰이는 패널 중 절반 이상을 납품하고 있으나 실적은 딴판이다. 두 회사가 주력으로 하는 제품군이 달라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3분기 영업손실은 5000억원을 넘어 2분기 연속 적자를 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이 같은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삼성디스플레이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호실적이 예측된다. 증권가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올해 6조5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해 역대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내다봤다.
희비를 가른 건 주력 제품의 차이다. 두 곳 모두 업계 '큰손' 애플 납품 비중이 높다. LG디스플레이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애플 PC 모니터(아이맥)와 노트북(맥북), 태블릿PC(아이패드)에 공급 중이다. 현재 애플은 모든 노트북에 LCD 패널을 쓰는데,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이 중 LG디스플레이 점유율은 55%에 달한다. 아이패드도 LG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LCD 비중이 약 38%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물량이 압도적이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14 시리즈에 삼성디스플레이 OLED 패널이 장착된 물량은 82%에 달하며, 고급형인 프로 모델은 대부분 삼성디스플레이 패널이다. 즉 같은 애플이라도 LG디스플레이는 LCD에,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에 집중하는 셈이다.
현재 LG디스플레이 전체 매출의 65%가 LCD에서 나오는데,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LCD 가격이 코로나19 특수가 종료된 시점에서 중국발(發) 저가공세와 공급과잉이 맞물려 크게 떨어졌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DSCC)는 "LCD TV 패널 가격이 지난 8월 최저점을 찍었다"며 "대부분 LCD 패널 가격은 원가보다 낮아졌고, 4분기에도 L자형 침체가 이어질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시장에 풀린 LCD는 많은데, 소비는 둔화하다 보니 현재 LCD 패널은 팔면 팔수록 손해를 입는다. LG디스플레이는 애플 공급망에서는 시장 지배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만, 워낙 판매가격이 낮은 탓에 수익성을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반면 지난 6월 LCD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시장 변화에서 100% 자유로운 상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에 집중하고 있다. 2000년부터 모바일용 OLED를 준비한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삼성전자와 애플을 모두 고객사로 두고 있다. 특히 애플의 경우 현재 모든 스마트폰(아이폰)의 디스플레이를 OLED로 전환한 상태다. LG디스플레이도 애플에 애플워치와 아이폰용 OLED를 공급 중이나, 삼성디스플레이의 입지가 워낙 크다.
LG디스플레이는 TV용 대형 OLED 패널에서 강세를 보인다. 특히 전 세계 TV용 OLED 패널의 90% 이상을 도맡고 있다. 다만 TV용 대형 OLED는 모바일용 중소형 OLED에 비해 시장 채용률이 낮다. 전 세계 스마트폰 패널 중 OLED 비율은 50% 안팎인 반면 전체 TV 출하량에서 OLED TV가 차지하는 비중은 4%대에 불과하다. LG디스플레이에서 패널을 공급받는 TV 제조사는 LG전자와 소니를 비롯해 약 20개에 달하지만, 전체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투자 대비 수익이 충분하지 않다.
업계는 TV용 OLED 시장이 크려면 더 많은 제조사를 비롯해 1위 사업자인 삼성전자가 뛰어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현재 OLED TV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패널 가격이 LCD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탓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TV용 대형 퀀텀닷(QD)-OLED 패널을 생산해 삼성전자와 일본 소니에 공급 중이지만, 수량이 제한적이어서 삼성전자의 연간 목표를 맞춰주지 못한다. 삼성전자는 OLED 패널 수급을 위해 LG디스플레이와도 협상을 벌였으나 공급 가격에서 이견이 커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LG디스플레이로서는 수익성을 단번에 높일 기회를 놓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TV 수요까지 둔화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OLED TV 판매량이 2013년 최초 출시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 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이 점차 LCD에서 OLED로 무게중심을 바꿔 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OLED는 전환이 빠른 편이다"라며 "소형 OLED를 10여년 전부터 공략한 삼성은 실적이 좋은 반면, 이 흐름을 타지 못한 LG디스플레이는 여전히 LCD 업황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했다. 그는 "LG디스플레이가 늦게나마 중소형 OLED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기술력과 노하우 등에서 삼성디스플레이를 따라가기는 사실상 역부족인 상황이다"라고 했다.
LG디스플레이는 TV용 LCD 패널 사업을 내년까지 축소하고 모니터, 노트북 등 정보기술(IT)용 LCD와 OLED 제품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다만 업계는 분기 연속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보이고 있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LCD 패널 가격 하락에 이어 TV용 OLED 디스플레이 판매가 기대치를 밑돌고 있는데, 이 기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LG디스플레이의 재무 상태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