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 있는 SK실트론 생산 시설에서 연구원들이 반도체용 핵심 소재인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SK실트론

글로벌 경기 침체로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불황이 심화하고 있지만, 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웨이퍼(반도체 원판)는 불황을 모르고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국내 유일 웨이퍼 제조업체 SK실트론도 올해 호실적이 예상된다. 반면 메모리 중심의 SK하이닉스는 실적 전망이 하향돼 대조를 이룬다. 메모리 시장은 주춤하고 있으나 웨이퍼는 메모리·비메모리를 가리지 않고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재료로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사물인터넷(IoT) 등 비메모리 분야 수요가 꾸준한 덕분이다.

1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메모리반도체 시장 2위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2조551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8.8%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매출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메모리 수요가 둔화한 탓이다. 4분기 전망도 좋지 않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3분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전분기보다 각각 10~15%, 13~18% 떨어지고, 4분기에도 13~18%, 15~20% 각각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같은 SK㈜ 소속의 비상장 기업 SK실트론은 분위기가 좋다. SK㈜에 따르면 SK실트론은 올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32% 증가한 277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하반기에도 좋은 흐름이 예상된다.

웨이퍼는 반도체 칩의 토대가 되는 얇은 원판(圓板)이다. 전 세계 공급량의 94% 이상을 글로벌 5개 회사가 맡고 있다. SK실트론은 이 중 하나다. 주요 고객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인텔, TSMC 등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가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메모리 시장은 부진해도 비메모리로 버티는 게 가능하다. 비메모리 분야 수요가 꾸준해 SK실트론은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SK실트론의 비메모리 웨이퍼 매출은 메모리용 웨이퍼 부문을 앞선다. SK실트론 관계자는 "비메모리와 메모리 웨이퍼를 함께 생산해 서로 헤징(hedging·위험 분산)이 되는 구조로, 비메모리 부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라며 "하반기에도 탄탄한 실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업계는 서버 등의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적어도 2026년까지 웨이퍼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본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실리콘 웨이퍼 출하량은 전년 동기보다 7.5% 증가한 73억8300만in²(제곱인치)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SK실트론의 주력 제품인 300㎜(12인치)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12인치는 주로 첨단공정 반도체 생산에 쓰인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실리콘 웨이퍼 시장에서 12인치 점유율이 내년 73.9%, 2025년 75.5%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웨이퍼 업계 1위 일본 섬코는 2026년까지 12인치 웨이퍼 공급 계약이 끝난 상태다.

그래픽=이은현

수요는 몰리고 공급은 달리니 가격은 오르고 있다. SK실트론은 "실리콘 웨이퍼 판매 가격은 2016년부터 상승 추세에 있으며, 2017년 급등 이후 2021년 2분기부터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 그래픽처리장치(GPU) 세계 1위 업체 엔비디아는 최근 신제품 가격을 올린 이유로 12인치 웨이퍼 가격 급등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웨이퍼 공급 부족 외에도 중국의 폴리실리콘(웨이퍼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연쇄 상승이 일어난 측면도 있다"고 했다.

SK실트론은 웨이퍼 수요 급증에 대비해 제품군을 다양화하는 등 선제적인 투자에 나섰다. 12인치 실리콘 웨이퍼 공장 증설에 2조3000억원을 투자하고, 전기차용 전력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공장에 6억달러(약 8553억원)를 투입한다. 무선통신용 반도체 소재로 수요가 늘고 있는 질화갈륨(GaN) 웨이퍼 시장에도 진출한다. SK실트론 관계자는 "세계 웨이퍼 업계 리더를 목표로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투자에 도전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