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20일 오전 파행 두 달여 만에 여당 간사를 선임하고 전체회의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20일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 처리에 앞서 이해관계자 목소리를 듣기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2소위)가 지난 4월 21일 ‘국내 사업자 역차별과 망 중립성 적용 문제, 자유계약 원칙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이유로 이들 법안의 의결을 보류하고 공청회 개최를 결정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국회 과방위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을 여당 간사로 선임하면서 ‘반쪽’ 운영에 대한 우려는 불식했지만, 문화체육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과는 좀처럼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법안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과방위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10시부터 ‘정보통신망 이용료 지급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심사를 위한 공청회’를 진행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7개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국회는 공청회 이후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을 다시 과방위 법안소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등을 거쳐 본회의에 올릴 방침이다.

이날 전체회의에는 과방위 소속 여야 의원이 전원 참석했다. 과방위가 박 의원을 여당 간사로 선임하면서다. 앞서 여당 의원들은 야당 과방위원장(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체제에서는 여당 의원이 2소위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난 7월 27일과 29일, 8월 18일, 24일, 9월 7일 전체회의에 불참한 바 있다. 박 의원은 간사 선임 의결 후 “참 어렵게 간사에 선임됐다”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더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한두 달간 정상 운영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최종 책임자로서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과방위 파행 원인이었던 2소위원장직에 대해서는 양당이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다만 공청회에는 야당 의원들만 참석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석 이유에 대해 공청회 준비가 여야 합의 없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과방위가 참석을 요청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도 이날 관련 협회와 학계 등을 통한 진술을 택했다.

콘텐츠사업자(CP) 측 진술인으로 공청회에 참석한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인터넷은 모두가 데이터전송을 하면 아무도 전송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상부상조 원리’에 따라 만들어져 모두가 모두에게 무제한 통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체계다”라며 “해외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비용은 생각지도 않고 조그만 국내 망을 지난다고 돈을 받겠다는 것은 망 사업자 독점의 폐해다”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측 진술인으로 나선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면 그에 따른 요금을 지불하는 게 당연한 시장의 규칙이다”라며 “국내·국외 CP의 99%는 망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고 통신사, 최종 이용자, CP 간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우리나라 인터넷 생태계를 발전시켜 왔는데, 트래픽 대부분을 유발하는 일부 초대형 CP들이 이런 인터넷 거래 질서를 부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안 및 기금운용계획변경안에 대한 소위원회 심사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내 업계는 이번 공청회를 기점으로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 처리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방위가 정상 운영의 발을 뗀 데다, 여야가 앞서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어서다. 실제 국회에 계류 중인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 중에는 김영식,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것도 있다.

통신업계는 이들 법안이 구글, 넷플릭스 등 해외 CP의 망 사용료 지불을 강제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CJ ENM,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매년 통신사에 700억~1000억원에 달하는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구글과 넷플릭스는 ‘공짜 점심’을 누리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SK브로드밴드의 경우 이 문제로 2년 넘게 넷플릭스와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망 사용료 의무화 논란이 곧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다른 업계로 번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종 주행 정보를 주고받는 첨단운전보조시스템(ADAS)과 영화, 음악 등을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OTA) 등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 송수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보통신망 부담이 커지면 통신사는 관련 비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지난해 말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망 중립성 원칙에서 자율주행차는 예외로 둔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문체위의 반대라는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문체위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9시 30분에 망 사용료 의무화에 반대하는 ‘K-컨텐츠 산업과 바람직한 망이용 정책 방향 토론회’를 열고 “미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망 사용료 법안이 사실상 미국 기업에 세금을 매겨 국내 통신사에 이득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미 정부가 보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 7월 동일한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황성필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계약체결의무를 부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계약체결 ‘여부’ 결정에 대한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도록 하고 그 위반을 금지행위 위반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정부가 계약체결을 강제하고, 정당한 대가가 얼마인지에 대해 정부가 심사·결정하며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류 중인 법안들은 주로 CP가 ISP에 망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내용뿐이다”라며 “종국적으로 국민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공익적 차원의 인프라 개선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