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경기 분당시 판교 카카오게임즈 사옥 인근,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이용자가 게임사에 항의하기 위해 마차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김민국 기자

불만이 빼곡히 적힌 전광판이 달린 트럭부터 실제 말이 끄는 마차까지, 게임사에 반발을 표출하는 게임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임사 불통에 ‘뿔난’ 우마무스메 소비자의 집단행동에 게임 평점은 물론 회사 주가까지 타격받자,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등 결국 백기를 들었다. 반면 게임사가 소비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경우 응원의 의미에서 사옥에 ‘커피 트럭’을 보내는 등 소비자는 ‘당근’과 ‘채찍’을 모두 손에 쥔 존재가 됐다.

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카카오게임즈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우마무스메)’ 소비자가 게임사 운영 방식에 반발하며 발생한 마차·트럭 시위 사태는 소비자가 게임사에 미치는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카카오게임즈가 세 차례 사과문을 우마무스메 공식 카페에 올렸음에도 사태 진압에 실패하자, 결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나타난 소비자 요구대로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직접 사과문을 올린 것이다.

지난 6월 출시된 우마무스메는 카카오게임즈가 일본 사이게임즈로부터 들여온 미소녀 경마 게임으로, 이 게임의 흥행에 힘입어 카카오게임즈는 영업이익 900% 증가라는 올해 2분기 실적 ‘대박’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우마무스메 게임 소비자 사이에서 카카오게임즈가 일본 소비자와 달리 국내 소비자를 차별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폭발하면서 문제가 터졌다. 국내 우마무스메 소비자가 일본 소비자보다 적은 게임상 재화를 무료로 받았으며, 주요 게임 이벤트 소식도 한국 소비자가 늦게 공지받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소비자는 게임사의 불공정한 게임 운영을 이슈화했다. 우마무스메 소비자는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시 백현동 카카오게임즈 본사 일대에서 실제 말이 마차를 끌고 가며 1.4㎞를 도는 시위에 이어 지난 1일에는 정치권에 관심을 촉구한다며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트럭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4점대였던 우마무스메 게임 평점은 1점대까지 무너지고, 8월 11일 5만9800원이었던 카카오게임즈 주가는 트럭 시위 당일인 지난 1일 5만100원까지 하락했다. 8월 21일, 24일, 9월 1일 총 세 차례 카카오게임즈가 불만 사항의 개선을 약속하며 올린 우마무스메 공식 카페 내 사과문은 사태를 수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지난 2일 마차·트럭 시위를 주도했던 우마무스메 소비자가 ‘최후통첩’이라며 규탄 집회·불매운동·집단 소송 등을 추가로 예고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결국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지난 3일 직접 사과문을 올리며 갈등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앞서 지난 2일 소비자는 카카오게임즈가 운영 총책임자의 공식 사과나 간담회 개최 등 소비자의 요구사항에 응답하지 않았다며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의 공식 사과, 우마무스메 관련 모든 직원의 우마무스메 관련 업무 영구 배제, 카카오게임즈와 사이게임즈 간 퍼블리싱 계약 사항 모두 공개, 대표가 참석한 소비자와의 간담회 개최 등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게임 소비자 사이에서도 ‘카카오게임즈도 개발사가 아닌 퍼블리셔(게임을 유통 및 배급하는 회사)에 불과한데 일부 요구사항이 과하다’, ‘관련 모든 인원의 업무 배제 등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에도 결국 ‘최후통첩’에 명시된 소비자의 요구대로 지난 3일 조 대표가 사과문을 올리며 추후 소비자와의 활발한 소통을 약속하면서 현재로서는 ‘이번 싸움은 게이머의 승리다’라는 평가가 업계에선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이뤄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소비자의 트럭시위. /뉴스1

엔씨소프트 역시 모바일게임 ‘리니지2M’ 유튜버 프로모션(광고료 지급) 관련 소비자 불만이 터지면서 지난 8월 소비자가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를 이어가는 등 게임 운영에 난항을 겪었다. 유튜버 프로모션이란 유튜버가 게임사로부터 광고비를 받고 특정 게임을 플레이한 후 광고 영상으로 올리는 마케팅 방식을 뜻한다. 엔씨소프트는 그간 리니지2M에 대한 유튜버 프로모션 마케팅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리니지W와 리니즈2M 방송을 진행해온 유튜버가 리니지2M 관련 방송을 해 광고료를 지급받았다고 밝히면서 사용자는 “일반 게임 소비자를 우롱했다”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지난 8월 리니지2M 개발을 총괄한 백승욱 엔씨소프트 본부장과 개발자들이 유튜브에 사과 영상을 올리고 사태를 해명했다. 백 본부장은 광고 계약을 맺은 리니지W 방송 횟수에 리니지2M 방송을 포함한 것을 인정하면서 이를 가능하게 한 조항을 지난 7월 29일 이후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게임 소비자가 게임 밖으로 나와 소비자로서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권까지 반영되는 모습이다. 게임사가 소비자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일부 국회의원은 카카오게임즈와 엔씨소프트 등 게임사의 게임 운영 및 마케팅 방식 관련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마무스메 소비자와 카카오게임즈 사이 갈등 사태에 대해 “게이머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자면 카카오게임즈 측에 잘못이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라며 “입법과 개정을 통해 게임 이용자 보호를 위해 더욱 힘쓰겠다”라고 했다. 앞서 이 의원은 리니지2M 소비자가 비판했던 엔씨소프트의 ‘프로모션 계정’ 운영과 관련해서도 지난달 법리 검토와 여론 파악을 거쳐 게임사에 ‘게임 내 프로모션 계정 표시’를 제안했다. 프로모션 대가로 광고료를 받은 인플루언서의 게임 속 계정을 명확히 드러나게 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만 게임 소비자가 게임사에 ‘채찍’만 흔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비자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게임사에는 ‘커피 트럭’을 보내 회사를 응원하기도 한다. 모바일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FGO)’ 소비자는 오는 7일 서울 구로구 넷마블 사옥에 커피 트럭을 보내 회사 직원에게 소비자가 모금으로 마련한 커피를 전달할 예정이다.

FGO 역시 우마무스메처럼 일본에서 개발한 게임을 넷마블이 퍼블리싱한 경우인데, 넷마블이 지난해 FGO의 주요 보상 이벤트를 해외 서버보다 빠르게 갑자기 중단하면서 ‘국내 소비자를 차별한다’라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이에 소비자는 넷마블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를 진행했으며 논란이 커지자 권영식 넷마블 대표까지 나서서 사과했다. 이렇듯 게임업계 트럭 시위를 촉발한 게임이 사과 이후 지속된 서비스 개선과 간담회를 거쳐 1년 만에 오히려 커피 트럭을 받게 된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회사의 흥망성쇠가 엇갈리는 대표적인 흥행사업이라 소비자의 역할이 다른 산업보다도 중요하다”라며 “자신의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낀 게임 소비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임사만이 생존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