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 심 IBM 전략·지속가능성 총괄 부사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IBM 제공

최근 지속가능성이 사회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업 전반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환경 측면에서 예를 들면 본사 회의실에서 제품 생산 공장까지 기업이 보유한 모든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수치화해 에너지 사용량을 조절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각국의 정부가 부여한 탄소 배출 감축 의무를 이행하고, 투자자를 확보하며, 소비자 호감도를 높이는 세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실제로 오라클이 올해 초 전 세계 15개국, 1만1000명 이상의 소비자와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의 경영인(93%)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한 앞으로의 의사결정에 사람보다 AI를 더 신뢰할 것이라 밝혔다. 이들은 AI가 가진 강점으로 오류 없는 데이터 수집(43%), 합리적이고 편견 없는 의사결정(42%), 측정지표와 과거 성과 기반의 미래 성과 예측(41%) 등을 꼽았다.

IBM은 지속가능성 영역의 시장 가치를 일찌감치 포착한 클라우드 기업 중 하나다. 2005년부터 판매해온 기업자산관리(EAM) 솔루션 '맥시모'에 2019년 AI를 입혀 리브랜딩한 게 대표적인 예다. 현재는 성능 최적화 기능으로 설비의 수명을 연장하고, 정전 등 문제 발생 시 운영 중단 시간 및 비용을 감축한다는 점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기질, 지리적 특수 요소 등 데이터를 분석해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잠재적 피해 규모를 알려주는 솔루션 'EIS'를 구축해 공개했다.

올해 1월엔 호주 기반 소프트웨어업체 엔비지를 인수, 그간 개발한 기술을 통합했다. 엔비지는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측정, 개선책을 제안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IBM 인수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우버, 시스코, 모건스탠리, S&P글로벌 등 140개국 150개 기업을 고객사로 뒀다. 크리스티나 심 IBM 전략·지속가능성 총괄 부사장은 "분야별로 비슷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경쟁사는 많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솔루션을 하나의 플랫폼에 집약한 곳은 IBM이 유일하다"며 "IBM은 이 플랫폼에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기업들에 활용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심 부사장을 만나 국내 산업계가 지속가능성 실천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심 부사장은 벤처 투자, 파트너십 체결을 포함한 IBM 전사 성장 전략에 지속가능성을 접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IBM 합류 전 부즈앨런앤해밀턴, 베인앤드컴퍼니,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등 컨설팅업체를 두루 거쳤으며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과 프린스턴대 국제문제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크리스티나 심 IBM 전략·지속가능성 총괄 부사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IBM 제공

一 한국 기업은 이제 막 지속가능성 실천을 회사 성장 전략에 포함시키는 단계에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 기업보다 다소 늦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IBM 기업가치연구소가 올해 전 세계 최고경영자(CEO)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글로벌 CEO의 절반 이상(51%)은 지속가능성 실천을 조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답했다. 전년 대비 37% 늘어난 수치다. 반면 그렇다고 답한 한국 CEO의 비율은 같은 기간 34%에서 35%로 1%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이뤄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고객사와 규제 당국이 기업에 상당한 수준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의 시행령을 지난달에 확정했다. 통상 미국 내 10여개주 정도는 캘리포니아주의 선례를 따르기 때문에 이번 시행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지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 기아 등 대기업을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적극적인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 배출 감축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一 지속가능성은 어찌 보면 광활한 개념이다. 구체적인 정부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실천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개념 자체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지금이 기업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다. 규제 측면에서 제일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럽도 자세히 보면 민간에서의 움직임이 더 빠르다. 기업이 당국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다. 표준의 부재가 한 예다. 기업이 지속가능성 관련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국제 기준은 현재 15개가 넘는다."

一 그렇다면 기업이 현시점에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뭔가.

"우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는 기업이 속한 산업군마다 다를 수 있다. 환경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 나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포괄하는 게 지속가능성이기 때문에 기업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목표를 정한 뒤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그 데이터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취합한 데이터는 조직 내 모든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이 과정 전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IBM의 솔루션이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일을 AI를 통해 간편화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IBM은 이제까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솔루션을 발표해왔다. 다음에는 기업이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솔루션도 함께 마련할 예정이다."

一 IBM 솔루션을 도입한 국내외 고객사 사례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서비스 해온 맥시모를 이용하는 고객사가 가장 많다. 실시간 유지보수를 통해 설비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전력공사, LG CNS가 대표적이다. 해외 고객사 중엔 덴마크 토목업체 순드앤벨트(Sund & Bælt)의 사례가 특히 흥미롭다. 덴마크에는 길이 18㎞의 '그레이트벨트'라는 대교가 있다. 순드앤벨트는 맥시모가 드론, IoT(사물인터넷) 센서 등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유지보수를 실시, 대교의 수명을 무려 100년 연장할 수 있었다. 순드앤벨트가 맥시모를 도입해 줄인 예상 탄소배출량은 75만t으로 추정된다."

一 지속가능성 기술의 글로벌 시장 전망은 어떤가.

"예측치가 있긴 하지만 워낙에 편차가 커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2025년까지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180억달러(약 25조원) 규모로 성장한다는 분석도 있고, 510억달러(약 69조원) 규모로 성장한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을 지속가능성 기술로 분류하느냐에 따른 차이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계속해서 더 많은 소비자가 기업에 지속가능성 실천을 요구할 것이란 점이다. 특히 미래 세대인 MZ세대가 주목하는 만큼 기업은 앞으로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