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주파수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이 1대도 없는데, 5G 특화망(이음) 서비스를 체감하기 어렵죠. 대부분 4.7㎓ 주파수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8㎓ 서비스는 아직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한 이음 5세대 이동통신(5G) 사업자의 얘기다. 정부는 '진짜 5G'로 불리는 28㎓ 주파수의 5G 특화망 촉진을 추진하기 위해 관련 기업들과 협의체를 출범하고 오는 10월 중 전략 로드맵을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특화망의 핵심인 28㎓ 주파수 대역을 지원하는 스마트폰의 출시 소식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상황이다. 지난 8월 26일 출시한 삼성전자의 4세대 폴더블(접는) 스마트폰 갤럭시Z폴드·플립4도 28㎓를 지원하지 않는다. 사실상 '5G 세계 최초 개통' 국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상황이다.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3사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26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박윤규 과기정통부 제2차관 주재로 '5G 특화망 기반 융합서비스 활성화' 간담회를 개최했다. '제7차 디지털 국정과제 현장 간담회'의 하나로 열린 회의에는 장비제조사·SI기업·통신사 등 5G 특화망 공급기업, 공공·민간 수요기관 관계자, 학계, 전문가 30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5G 특화망 활성화를 위해서는 28㎓를 지원하는 스마트폰 등 단말기 공급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소문만 무성한 28㎓ 스마트폰…3년째 출시 '불발'
사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2020년 5G 출범 초기 때부터 논란이 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통신 3사는 앞다퉈, 롱텀에볼루션(LTE)보다 20배 빠른 5G 세계 최초 개통을 홍보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4월 '5G+ 전략 발표'에 참석해, 5G를 통신 고속도로에 비유하며 "4G보다 속도는 20배, 연결 기기는 10배 늘어나고 지연 속도는 10분의 1로 줄어든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통신사들이 금방이라도 구축할 것 같았던 28㎓ 기지국은 애초 목표 대비 10%밖에 채우지 못했고, 통신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아예 출시되지 않았다. 2020년부터 28㎓ 스마트폰이 출시될 것이라는 루머는 많이 돌았다. 하지만 갤럭시S20, 갤럭시S21, 갤럭시Z폴드3, 갤럭시S22도 28㎓ 통신칩이 적용되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출시된 4세대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폴드4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28㎓ 지원 스마트폰이 출시되지 않는 것은 실제 사용하는 사람이 적고, 고속의 28㎓ 지원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배터리 등 다른 부품의 혁신도 필요하기 때문에 시장성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라며 "28㎓ 장비는 일반 5G 장비에 비해 커버리지가 10배 이상 좁기 때문에 28㎓를 전국망 수준으로 설치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설투자의 10배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다"고 했다. 그는 "초기 정부와 통신사들이 '세계 최초 개통' 등 타이틀과 속도 홍보에만 치중하면서, 현재의 5G 현실과 국민의 기대감 사이의 큰 괴리가 생겨났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과기정통부는 5G 특화망(이음) 사업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다. 현재 정부가 발표한 이음 사업자는 네이버클라우드(1호), LG CNS(2호), SK네트웍스서비스(3호), 네이블커뮤니케이션즈(4호), CJ올리브네트웍스(5호) 등 다섯 곳이다. 하지만 사업자들 모두 스마트폰 등 단말기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28㎓ 지원 스마트폰, 태블릿, 로봇 등 단말기를 생산하는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컨대 네이블커뮤니케이션즈는 이음 5G를 활용해 환자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검사 결과 정보를 3차원(3D)으로 모델링한 증강현실(AR) 수술 가이드 서비스를 지원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는 단말기는 아직 없다. 이음 5G의 취지인 초연결 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난달 30일 이음 5호 사업자로 지정된 CJ올리브네트웍스는 ▲실시간 영상편집·실감형 콘텐츠 개발 ▲인공지능(AI) 기반 물류 로봇·지능형 물류 서비스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내년 투자 예정으로 현재로서 기술을 실현할 단말기는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 28㎓ 망 투자도 '부실'… "상용화부터 고민해야"
또 다른 문제는 28㎓ 상용화에 구심점이 될 단말기가 없다 보니, 통신사들의 기지국 투자도 지지부진하다. 과기정통부의 통신 3사 주파수 대역별 망 구축 실적 제출 현황을 보면, 5G 28㎓ 대역에서 LG유플러스가 1868대로 가장 많았고, SK텔레콤(1605대), KT(1586대)가 뒤를 이었다. 이는 망 구축 의무 수량(1만5000대) 대비 각각 12.5%, 10.7%, 10.6% 수준에 그친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통신 3사의 28㎓ 기지국수가 의무 구축수량 대비 10% 미만일 경우 주파수 할당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통신 3사의 기지국 구축 실적은 제재 기준인 10%를 겨우 넘겼다. 그나마 구축 수량으로 '인정'된 기지국 5059개 가운데 4578개는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구축한 뒤 각 회사별 통계에 중복 포함시켰다. 사실상 통신사들이 5G 주파수를 할당받았던 초기의 약속을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20년 통신 3사는 28㎓ 대역에서 전혀 수익이 발생하지 않자, 28㎓ 주파수 이용권에 대해 비용을 손실 처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28㎓ 서비스가 과거 킬러 서비스, 단말·장비 부재, 생태계 구축에 실패하면서 시장에서 사장된 '와이브로'와 비슷한 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프라 도입 이전에 28㎓가 필요한 시장을 찾고 관련 킬러 서비스를 발굴하면서, 상용화 방안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통신학과 교수는 "정부가 28㎓ 서비스를 한다고 하는데, 28㎓ 지원 스마트폰 없이 기지국만 깔아봐야 어떤 서비스도 할 수 없다"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센티브 등 지원책을 통해 스마트폰 등 단말기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5G의 강점은 초고속뿐 아니라 초저지연과 대규모 연결 등에 있는데, 한국은 오직 5G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속도 이외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발굴해 28㎓ 생태계 구축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 5G 특화망
통신과 정보기술(IT)을 결합한 5G 융합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업자가 직접 두 가지 5G 주파수(4.7㎓, 28㎓)를 공급받아 특정 지역에 5G망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28㎓ 대역은 4.7㎓ 대역보다 더 빠르고 지연 없이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전파 도달 거리가 짧아 소비자용 5G보다 기업용(B2B) 5G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