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030200) '민영화 20주년 기념식' 사진에 등장하는 6명의 인물은 KT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 사업(통신)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를 이끌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DIGICO)으로 체질 개선을 하겠다는 KT 의지의 표현이다. 대한항공(003490), 신한금융지주, 이루온(065440), 리벨리온, 한통,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이끌고 있는 6인의 수장은 KT의 디지코 동맹군이다.
31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KT는 전날 서울 송파구 소피텔 엠버서더 서울 호텔에서 민영화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전·현직 KT CEO, 임원, 이사진과 정부, 정치인, 협력사 등 약 120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세리머니에 참석한 인물은 전체 인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2명뿐이었다. 세리머니는 무대 앞 대형 스크린에 손을 대고 마치 손도장을 찍는 식으로 진행됐다.
구현모 KT 대표는 이 자리에서 디지코 전략을 강조했다. 구 대표는 "디지코 산업은 대부분 국가가 개화기 시장이고 성장률도 매우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며 "디지코 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해 해외 전략 거점을 확보하고 현지 1등 파트너사와 협력을 추진함과 동시에 국내 기업과도 동반 진출해 성장 기회를 나누겠다"고 했다.
세리머니 참석자 12명 중 6명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KT의 파트너 기업인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김명준 ETRI 원장, 강미영 한통 사장, 이영성 이루온 대표 등이다.
대한항공은 KT와 함께 국토부 도심항공교통(UAM) 실증사업 수주를 위한 컨소시엄을 구축했다. KT 등 컨소시엄은 2025년까지 국내에 UAM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KT는 실증사업에서 UAM 통신인프라 구축과 드론교통관리 시스템 개발 등을 맡는다. 상공 통신망 구축과 UAM 이해관계자 간 데이터 서비스 플랫폼의 역할도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KT는 융합기술원장을 중심으로 모빌리티 사업단과 전략기획실을 비롯해 위성통신을 담당하는 그룹사 KT SAT(샛)과 KT에스테이트 등 50여명이 참여하는 VTF(버추얼 TF)를 꾸렸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1월 KT와 서로의 지분을 맞교환한 혈맹 관계를 구축했다. KT와 신한은행은 각각 4375억원씩 서로의 지분을 매입하고 '미래성장DX 사업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통신과 금융 분야의 역대 최대 규모 협력이었다. KT는 비상장사인 신한은행의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 지분 4375억원(2.08%)을 취득한다. 신한은행은 NTT도코모가 보유했던 KT 지분 4375억원을 획득해 KT 2대 주주(5.48%) 지위를 확보하는 식이다.
양사는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TF), 빅데이터 등 디지털 플랫폼 기술 기반으로 금융 디지털전환(DX) 사업 등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현재 인공지능 은행원(AI 뱅커)이 고객을 응대하는 신한은행의 혁신 점포 '디지로그'에 KT의 인공지능과 로봇 솔루션을 적용해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또 KT의 상권정보 서비스 플랫폼 '잘나가게'의 입지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한은행이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또 KT는 자사의 인공지능(AI)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AI 반도체 기술 고도화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7월 발표한 국내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리벨리온 투자다. KT는 약 300억원을 투자했다. AI 반도체는 AI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대규모 연산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가리킨다. AI의 핵심 '두뇌'인 셈이다.
스페이스X와 모건스탠리 출신인 박성현 대표가 2020년 9월 창업한 리벨리온은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 분야에서 입지를 빠르게 다진 업체다. 설립 1년 만인 지난해 업계에서 독보적 선두였던 인텔의 '고야'보다 처리 속도가 빠른 금융 AI 특화 신경망처리장치(NPU) '아이온'을 선보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KT는 리벨리온의 AI 반도체 역량을 융합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천장 규모에 달하는 초대규모 'GPU 팜'을 연내 구축한다. 내년에는 리벨리온의 아이온을 기반으로 데이터센터에 특화된 반도체를 출시하고, 이를 KT의 다양한 클라우드 인프라 환경에 국내 최초로 적용하기로 했다.
ETRI는 지난 2020년 3월 취임한 구 대표가 처음으로 추진한 'AI 원 팀'의 멤버다. 당시 KT는 ETRI, 현대중공업지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과 손잡고 AI 협의체를 출범했다. 이후 KT는 대학·대학원생을 비롯해 내부 직원들의 재교육 등 AI 인재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 사내공모를 통해 AI, 클라우드, DX 분야로 직무 전환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구 대표가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인공지능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만큼, 인재 육성을 통해 디지코 경쟁력 강화를 꾀하는 전략이다.
또 이날 세리머니에는 디지코뿐만 아니라, KT의 본질인 안정적인 통신서비스 제공을 위한 의지도 엿볼 수 있었다. 세리머니에 참석한 이루온은 유무선 통신 핵심솔루션장비 제조기업이다. 3세대 이동통신(3G)에서 5세대 이동통신(5G)까지 KT에 기지국 및 통신 장비를 납품하는 공급사다. 또 한통은 20년간 KT의 유무선 상품을 판매한 영업 협력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마케팅 대행사 대표는 "세리머니 참여자는 CEO의 의지와 행사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KT에서도 많은 고민을 해서 인물들을 선정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AI반도체, UAM, 금융 등 신사업 분야와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있고, 통신의 본질인 장비와 영업에 대한 중요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